오피니언

우리 필담으로 이야기해요

말 못하는 환자와 소통해본 경험 동행한 지인 없어 필담으로 설명 실밥 풀던 날 감사편지 받아 기뻐



몇 년 전 기억에 남는 수술을 했던 환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간이 오래 지난 터라 챠트를 찾아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낮은 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찾아온 환자였다. 그런데 혼자 오지 않고 지인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화로 예약한 것도 지인이 한 것이었다. 환자는 선천적인 장애로 인해 말을 할 수 없고 들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잘 헤쳐나갔던 모양이다. 이제는 수화로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 상태였고,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하면서 어엿한 모습으로 자립을 한 상태였다.

함께 온 지인은 나와 이야기를 먼저 하고, 이 내용을 수화로 바꾸어 그에게 전달하였다. 환자 역시 원하는 바를 한 단계를 거쳐서 내가 이해한 다음, 그 대답을 하면서 서로 대화를 이어 갔다.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환자가 원하는 바를 충분히 경청하려고 노력하면서 수술을 준비했다. 수술은 비교적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실리콘 보형물을 정확하게 제작한 다음 코를 높이는 것으로 수술을 마쳤다. 수술 후 높아진 코에 만족해하는 환자와 보호자의 얼굴을 보고 함께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났다.

그 후 수년 동안 잊고 지났었는데, 다시 연락이 온 것이다. 진료실에서 마주 앉고 보니 비록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이번에도 예전의 그 지인과 함께 찾아왔다. 예전과 다름 없이 수화로 서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번에는 코의 보형물이 조금 더 높았으면 좋겠고, 코끝도 더 오뚝하게 세웠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수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이제, 예전의 보형물을 교체하고 코끝의 연골을 다시 재배치하기로 수술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수술 당일,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함께 병원을 찾아왔던 지인에게 급한 사정이 생겨 혼자 병원에 오게 된 것이다. 환자는 조금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해야 하는데, 어쩌지?’하다가 시간은 걸리겠지만 글로 써서 이야기해야겠다고 결심하고는 메모 수첩을 꺼냈다. “불안하겠지만 일단 이렇게 글로 써서 이야기합시다”라고 이야기하고는 글을 써 의사소통하기 시작했다. 메모장에 빼곡히 수술과 수술 청약에 관한 사항을 꼼꼼히 기록하면서 설명해 주고, 하나하나 환자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차츰 메모장은 온데간데없이 실제로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한 문장을 쓰면, 환자도 그 아래에 한 문장으로 답을 했다.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면서 설명하니 이해하기 더 쉬워진 것 같았다.

이렇게 설명하고 나서 수술을 진행했다. 귀 연골을 떼어내고 그 자리를 메우고 봉합했다. 그 후, 코로 돌아가 예전에 넣었던 보형물을 조금 더 높은 것으로 바꾸어준 다음. 떼어낸 귀 연골과 코끝 연골들을 모아서 오뚝하게 코끝을 세워 주었다. 수술 후 주의사항도 수술 전에 이미 이야기해 두었지만,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고 환자는 내심 안심한 듯이 병원을 나섰다.

다음날부터 환자는 혼자 병원을 찾아왔다. 이제 글로 대화를 할 수 있으니 따로 동행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글로 하나하나 대화를 한 것을 날짜 순서대로 붙여서 챠트가 두툼해지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완벽하게 이루어졌으니 이 두께만큼이나 믿음이 쌓인 것 같아서 우리 모두 만족스러웠다. 예전보다 높고 오뚝해진 코의 모습이 만족스러웠던지 실밥을 떼던 날 장문의 편지를 가지고 찾아왔다. 힘든 상황에서도 수술해 주어서 특별히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가끔 수술을 맡은 환자들로부터 감사편지를 받곤 하는데, 그런 편지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의사 생활을 하는 동안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고, 환자에게 정성을 다하게 만드는 힘이라고나 할까? 매서운 겨울바람이 우리 곁을 스쳐 가는 스산한 계절이다. 이 겨울,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서로의 마음을 통하는 노력이 함께한다면,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해 주는 작은 모닥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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