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원전을 선언한 국가의 대통령이 펼친 원전 세일즈에 대해 방문목적도 평가도 크게 엇갈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원전의 ‘안전성’을 설명하면서 “한국은 현재 24기의 원전을 운영 중에 있으며, 지난 40년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며 특히 “UAE 바라키 원전의 경우 사막인 악조건 속에서도 추가비용 없이 공기(工期)를 완벽하게 맞췄다”며 ‘기술성과 경제성’도 강조하였다.
이에 바비시 총리는 “UAE 바라키 원전사업의 성공사례와 한국원전의 안전성과 우수성을 잘 알고 있다”며 “양 정상은 체코의 원전사업과 긴밀히 협의해나가기로 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를 두고 야권에선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해외에 원전을 판매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비윤리적 외교”며 “동네에서 냉면 한 그릇을 팔아도 지켜야 할 상도의가 있다”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한 보수언론은 “자기 자식에겐 불량품이니 먹지 말라고 하면서 다른 집 아이에게는 그걸 파는 악덕업자를 연상케 한다”고 비난했고, 탈원전 논란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청와대에선 ‘에너지 전환정책과 탈원전’은 별개라고 하였고, 외교부에선 대통령의 ‘에너지 세일즈 외교’는 성과가 있었다지만 왠지 설득력이 약해 보이고 어리둥절하다.
대통령의 외교활동을 놓고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원전을 줄이면서도 수출은 할 수 있다. 문제는 대통령의 거듭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의원시절인 2014년 7월 고리원자력에서 원전의 위험성을 강조하였고, 취임 한 달 후인 작년 6월에는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탈핵 시대로 가겠다”며 신규원전 건설 백지화, 기존 원전수명 연장포기, 연장 가동 중인 월성1호기 폐쇄를 선언하였다. 탈원전 발표였다. 그래놓고 다른 나라에 가서는 우리 원전이 안전하고 가격도 싸니 사달라는 식이다. 외교적 수사라 치더라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체코 국명의 표기실수도 상대국 대통령의 부재중 방문도 외교적 결례며, 외교부의 민낯으로 비친다.
더 이상 대통령의 의중만 살피는 졸속정책은 금물이다. 신고리 5, 6호기의 공사중단으로 인한 엄청난 갈등과 손실이 그 교훈이다. 세계적인 흐름은 친원전 회귀다. 후쿠시마 사고 후 원전의존도를 낮추었던 일본을 비롯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대부분 국가가 속속 복귀하였고, 자원부국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도 원전건설에 열심이다.
현재 탈원전 선언국은 우리와 독일·스위스·벨기에·대만 정도다. 대만은 지난달 실시한 국민투표로 2025년까지 가동을 중단시킨 탈원전 정책을 폐기시켰다.
이제 순수한 탈원전 국가는 독일뿐이다. 벨기에는 원자력비중(49.9%)이 세계 2위며 스위스는 4위(33.4%)로 매우 높다.(세계원자력협회, 2017) 독일의 결정은 20년 넘게 국론을 모았고, 스위스도 33년 동안 국민투표를 무려 5차례나 실시하였다. 그게 맞다.
정부발표대로 2029년까지 10기를 폐쇄하고, 2023년까지 신고리 6호기를 끝으로 더 이상 짓지 않는다면 60년간 쌓아온 원전 인프라는 물거품이 되고, 무분별한 태양광과 풍력발전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 될 거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들린다.
탈원전에 탈민심이다. 원자력에 의한 전기공급에 찬성(71.6%)하는 사람이 반대(26%)보다 약 3배나 많다. (한국리서치) 이념 성향에 관계없이 공론화 후 국민투표가 대세고, 정의당마저도 지난 대선공약이었다.
그동안 환경단체의 위세에 눌러 숨죽이던 전공교수(57개교 210명)와 원자력학회는 물론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도 같은 목소리다. 급기야 야당에선 에너지 정책전환 때는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하고 국민투표 실시를 내용으로 한 ‘에너지법 개정 법률안’까지 발의하였다.
정부가 답할 차례다. 이대로 가면 2030년까지 전력비용이 146조가 더 든다니 전력 대란이 올까 심히 걱정된다. 탈원전 논란, 아무래도 국민투표가 길인 것 같다.

이상섭

연변과학기술대 겸직교수

전 경북도립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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