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한국 체육의 아버지 김집

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끈 김집은 그해 12월 체육부 장관이 됐다. 김집 장관은 엘리트 체육의 체제는 잡았다고 보고 생활체육 발전에 집중했다.
김 장관은 조기 축구, 배드민턴, 등산 등을 생활체육으로 장려했다. 그는 특히 청소년 체육 문제에 몰두했다. 김집은 서울올림픽에서 절감한 3천500억 원의 예산을 국민 체육에 쏟아부었다. 그동안 체육계는 돈이 없어 기업들에 구걸하기 일쑤였다.
김집은 시도별로 국민 생활관을 짓고, 체육관ㆍ수영장을 넣도록 했다. 2년마다 교포 1천여 명을 초청, 한민족 체육대회를 개최했다.
1990년 3월 체육부 장관을 물러난 김집은 한국 청소년연맹 총재가 됐다.
그는 청소년들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에 주력했고, 특히 효 사상을 최고 이념으로 가르쳤다.
재임을 통해 1998년까지 총재를 역임한 김집은 그 해 은퇴했다.
은퇴 후 경기도 수원 실버타운에서 아내와 함께 생활하던 그는 2012년 2월4일 86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서울대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송하 전 연합뉴스 기자

연보

1926년 2월18일 경북 상주군 함창면 출생
1938년 상주 함창보통학교 졸업
1944년 경기중학교(현 경기고) 졸업
1948년 대구의과대(현 경북대 의대) 졸업
1948년 대구동산병원 수련의
1949년 11월30일 김인덕과 결혼
1950년 자원입대, 군의관 종군
1957년 6월 미국 에모리 대 소아과 유학
1961년 미국 피츠버그 대 소아과 전문의 획득
1961년 일본 요코하마 대학 의학박사 학위 취득
1962년 귀국, 동산병원 복직
1963~1980년 18년간 경북대 의과대 외래교수
1970년 김집 소아과 의원 개원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전국구, 체육계 대표)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1986년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 선수단장
1988년 서울 올림픽 선수단장
1988년 12월 ~1990년 3월 체육부 장관
1990~1998년 한국청소년연맹 총재
2012년 2월4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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