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환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인류의 역사 중 가장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는 시대, 하지만 정신적으로 가장 빈곤한 시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시간일까?
가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시대일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45억 년 이라는 지구의 역사, 그리고 7만 년이 넘는 현 인류의 조상이라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지금 이 시대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의미를 생각해 보곤 한다.
2018년 현재, 인류 역사상 가장 물질적으로 풍부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지구의 어느 한 편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먹을 것이 없어 굶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다수의 인류가 이렇게 역사상 물질적으로 풍족했던 시대는 없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이렇게 빈곤한 시대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증오와 독설, 요즘 사회현상을 보면서 필자의 머릿속을 떠도는 단어이다. 정치권도, 일반시민도, 학교, 회사도 모두 나와 다른 것이 있으면 적이 되고, 내가 눌러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다.
얼마 전 서울 이수역 근처 주점에서 남녀 폭행사건이 발생하였다.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SNS에 자신의 폭행당한 상처를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행 사건으로 규정되는 듯했다. 그런데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다가가 말다툼을 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폭행 사건의 진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이수역 폭행 사건을 둘러싼 청원이 성 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여성이 심한 욕설과 접촉을 했다는 이유로 ‘남혐범죄’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시비 끝에 남성의 폭행으로 인해 여성이 심한 부상을 당했다는 ‘여혐범죄’라고 규정짓고 있다. 국회의원과 정치인, 페미니즘 운동가, 래퍼까지 가세하면서 양상은 점입가경이다. 이수역 폭행사건은 동일한 사건이지만 전혀 다른 두 개의 프레임이 부딪히는 사례이다. 단순한 쌍방폭행사건으로 보는 시각과 젠더적 관점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여성에게 가한 일방적인 혐오와 폭력의 사건으로 보는 시각이 부딪히고 있다.
한쪽의 주장대로 여성을 비하하면서 싸움이 촉발되었는지 혹은 반대쪽의 주장대로 남성을 비하면서 싸움이 촉발되었는지 진실은 아직 알 수 없다. 여론의 관심과 청원인 숫자가 확대되면서 경찰도 부담스러운 입장인 듯 예전과는 달리 수사진행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일방의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증오는 상대방에 대한 독설을 낳고, 그 독설은 상대방의 일방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확대 재생산한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관심을 받는 사건이나 문제가 생기면 곧장 증오와 독설이 온라인을 점령한다. 온라인 상에서 서로 증오와 독설이 오가고, 상대방에 비방과 혐오를 증폭시키는 현상이 반복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인류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어떤 시대로 기록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증오와 독설의 시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만 정신적으로 빈곤한 시대이다.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공동체 구성원들을 분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건의 진실 규명보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서로의 이념과 정치적 지향을 논쟁으로 확대 재생산하려는 것은 아닌지 냉정한 판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진실보다는 각자의 주장과 편견만 온라인을 지배하기에 객관적인 판단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다 옳을 수 있다는 극단적 상대주의도 문제지만, 나만 옳다는 극단적 절대주의도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가치관이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극단적 절대주의와 나와 다른 상대방은 모두 적이라는 정글논리의 피아구별주의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정신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보면서 갖게 되는 생각이다. 미래의 역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2018년 대한민국을 어떻게 기록할까?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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