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섭연변과학기술대 겸직교수전 경북도립대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 강력한 반대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조명래 환경부 장관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였다. 여·야 원내대표가 청와대에 모여 대통령과 ‘소통과 협치’를 선언한 지 불과 4일 만이다. 이번에는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다. 지난번 유은혜 교육부 장관 임명 강행으로 인사청문회에 대한 무용론(無用論)과 청문회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이번이 문 대통령 취임 1년 6개월 만에 10번째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4년 6개월간 강행한 숫자와 맞먹는다.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된 장관급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이효성 방통위원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양승동 KBS 사장, 이석태ㆍ이은애 헌법재판관, 유은혜 교육부 장관에 이어 조명래 장관이다.
이쯤 되면 ‘국회패싱’, ‘무용지물’, ‘하나마나한’ 청문회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묻지마 임명을 계속할 바에야 무엇 때문에 청문회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도처에서 들린다. 이같이 회의론이 번진 건 “인사청문회에서 많이 시달린 사람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한 대통령의 발언 탓이다. 인사행정을 오랫동안 강의해 온 필자로선 임명권자의 인사관이 심히 우려된다. ‘내 사람을 내가 심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느냐’는 식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유은혜 장관의 청문회 과정을 한번 보자. 딸의 위장전입, 피감기관 건물입주, 후원자 지방의원 공천, 지방의원의 사무실 월세 대납, 남편재산 축소신고 등 각종 나쁜 의혹은 총 망라되었으며, 임명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7만 건을 넘었다.
이에 질세라 조명래 장관도 자녀 위장전입, 부동산 다운계약서, 증여세 탈루, 연구비 미신고, 4대강 사업에 대한 편향된 비판과 문 대통령 옹호 글, 두 살짜리 손자의 2천만 원가량 예ㆍ적금보유 등 마치 비리백화점 같다.
한술 더 떠 일국의 헌법을 다루는 재판관에 임명한 이은애 후보자는 8차례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헌재의 권위도 무시한 채 임명해 버렸다. 그간 청와대에서 성범죄와 음주운전을 추가한 7대 비리와 12개 항목의 인사검증 기준에 위배 안 되는 인물을 발굴하겠다고 한 약속은 헛구호였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법에는 문제가 없다. 국회청문 대상인 고위공직 63개 자리 가운데 국회동의는 23개며, 나머지 국무위원을 비롯한 고위직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동의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는 국회에선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제하고, 정부에서는 인사권 행사를 신중하게 함을 목적으로 2000년 6월23일, 인사청문회법이 제정, 도입됐다. 18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 모양이다.
미국은 우리와는 180도 다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6천 명의 관리 중 상원인준을 받아야 하는 공직이 무려 1천200명이나 된다. 인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대통령이 받는 정치적 타격이 크기 때문에 가혹하고도 철저히 검증한다.
물론 지명 전에 행정부에서 먼저 탈탈 털어 문제가 될 만한 후보는 아예 걸러내 버린다. 그다음에 백악관 인사국,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공직자윤리위원회 등에서 하는 200여 개가 넘는 문항과 무려 2∼3개월에 걸쳐 총 5단계의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처럼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논문표절, 탈세, 불법정치자금을 무슨 훈장인양 달고 다니는 후보들은 꿈도 못 꾼다. 이는 도덕성의 문제가 아닌 법적 문제며 범법 행위다. 청문회에서 ‘모른다’거나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은 ‘의회모독죄’로 사법처리도 가능한 게 미국이다. 참 부럽다.
인사청문회가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적임자를 탕평인사 하려는 임명권자의 의지와 실천이 먼저다. 미국처럼 전 국무위원을 의회동의를 받게 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부총리 2명이라도 청문회와 국회인준을 받도록 법 개정을 서두를 때다.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학수고대해 본다.

이상섭

연변과학기술대 겸직교수

전 경북도립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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