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장려상 - 천구도 / 박홍

2018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산새들의 재잘거림을 벗 삼아 발걸음을 옮긴다. 수련으로 들어찬 연못가에 다다르니 서쪽 천축산 능선에 우뚝 선 부처바위의 그림자가 맨 먼저 길손을 맞는다. 잔잔한 물결 위로 살포시 숨었다 얼굴 내미는 수줍음에 도량 넓은 자비의 마음까지 풍겨나 한층 고아(高雅)하다.

부처님의 손길 따라 대웅전으로 향하는 마음이 몹시 설렌다. 낯선 이를 만나러 수백 리를 달려온 길이다. 법당에 들어서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 다음, 고개를 들어 한참이나 천장을 살펴본다. 두 대들보에 한 마리씩 붙어 있는 금빛의 작은 거북이가 눈에 들어온다. 잃어버렸던 자식을 겨우 찾아낸 듯 희열이 감돈다. 거꾸로 매달린 채, 목까지 없어도 너무나 안온해 보인다. 순교(殉敎)의 혼이라도 지닌 듯 흩어짐 하나 없는 의연한 모습이다. 애처로움과 동정심에 의문까지 덮친다.

“혹여 화공이 잘못 그린 건 아닌지요.” 옆에 있는 스님에게 물어보았다. 스님의 대답인즉슨, “이곳은 화기가 승하여 수호신(水護神)으로 거북이를 모셔 불이 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원하는 답 대신 의아심만 곧추세운다. 스님의 마음엔 애오라지 의상대사가 창건한 아주 먼 옛적의 이 절집에 잦았던 화마로부터 벗어나려는 불심만이 남아 있는 듯하다.

실마리라도 잡힐지 경내로 나가본다. 대웅보전 기단 밑 좌우 쪽에 처형당한 죄인의 목처럼 댕그라니 머리만 남아 있는 두 거북이의 모습이 애잔하게 보인다. 죽어서도 날아들 화마를 지켜내려는 듯 하늘로 치켜든 기상이 가상스럽기까지 하다. 아무리 화기를 막는 방도라지만 몸통과 머리를 떼어 놓은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의문이 연줄처럼 이어진다.

얼마 전 일이다. 정결하고 웅장해 보이는 단양 대흥사를 찾은 적이 있다. 대웅보전이란 편액의 큰 글씨가 본당에 걸맞게 무게감을 더했다. 여느 절집과 다른 이름 ‘대웅전(大雄殿)’이 아니라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쓰인 글귀에 선뜻 물음표가 그려졌다.

본당 뜰 옆엔 낯선 스님과 거사 한 분이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곁으로 다가가 넌지시 물어 보았다. “묻지 말고 스스로 깨달아 보세요.” 옆에 앉은 거사가 퉁명스러운 투로 말을 받는다.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한다. “같은 뜻이라.” 보다 못한 스님의 대답이다. 상냥스러운 말씨 속에 자비로운 부처님의 모습까지 내비친다. 비록 거칠긴 했어도 가슴 깊이 파고들게 하려는 거사의 충고로 들렸다. 순간 “염(念)하면 각(覺)한다”는 어느 법사의 설법도 생각났다.

장고(長考)에 빠져든 한순간이다. 부처바위가 비춰준 그림자 따라 보고 들은 것을 가슴 깊이 숙성시켜 대중에게 베풀라는 부처님의 혜안을 거북이에 심어놓았으리란 여실지견(如實知見)의 한소식이 뇌리를 치고 든다. 어찌 그뿐이랴. 큰 스님들의 말씀처럼 ‘이 세상 만물 중에 어느 하나 천한 것이 없거늘’ 진정 자비는 생각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천장의 좁은 대들보에 그려져 있는 가련한 두 마리 거북이, 하늘의 계시를 받지 않고서는 어찌 그 큰 뜻을 이 거북이에 심어놓을 수 있었을까. 이름 하여 나는 이 거북이 그림을 주저 없이 천구도(天龜圖)라 부른다. 큰 보물이라도 얻은 듯 가슴이 콩닥거린다.

1994년에 이곳 울진군 불영사의 대웅보전(국가지정 보물 제1201호)과 후불탱화(보물 제1272호)가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천장의 대들보에 붙어 있는 그 두 마리 거북이, 오랜 세월 지치지도 않았는지 일그러짐 하나 없다. 커다란 탱화에 눌리어 지내온 무명의 작은 용사들이 아닌가. 비록 왜소한 가슴에 새겨 담은 심오한 뜻은 하늘을 감복시키고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큰 나무에 가리어 작은 숲에 담긴 진수를 놓치고 있지나 않은지……. 안타까운 마음에 관세음보살을 수없이 찾는다. 어쩌면 오늘날 서양문화의 뿌리를 이룬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그림처럼 영겁으로 불성(佛性)을 잇는 불신(佛神)의 몫까지 다 하지 않을까.

사람이 살다 보면 온갖 험한 일도 당하기 십상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자주 절집을 찾는다. 좀처럼 울분을 참기 힘들 때는 아침저녁 끼니때마다 ‘용서하며 살라’는 발원문을 봉독한다. 뼈저린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시방세계를 불국정토로 만들려는 천구의 가르침도 새겨본다. 사르르 녹아든 가슴에 푸른 하늘마저 담아본다. 참 시원하다.

퇴직하고 나서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일이 버릇처럼 되었다. 잘못한 것들이 더 많아 보인다. 때론 꿈에까지 나타나 잠을 설친 일도 있다. 좀 더 잘할 걸, 좀 더 사랑해 줄 걸, 좀 더 베풀 걸. 지금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리오.

별안간 몇 해 전 입적하신 혜운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다량의 맑은 물로 오염된 물을 정화시키듯, 남모르게 저지른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선업(善業)을 베푸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서 어찌 세상을 밝힐 수 있단 말이냐.”

“탐욕과 미움을 버리고 용서와 배려로 자신의 삶을 살아 나가라.”

저 멀리서 목탁소리에 젖어든 스님의 다그치는 말씀이 천구의 소리되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인도의 성녀 마더 테레사의 말도 따라나섰다. ‘최선의 미덕은 봉사’라고, 마음이 열리면 가슴이 따스해진다. 봉사도 선업이요, 한 가닥 자비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리라.

그렇다. ‘어지러운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봉사의 길을 찾아 나서자.’ 굳게 다진 마음가짐으로 복지센터를 찾아 나섰다. 때마침 20여 명의 회원들이 ‘연극을 하자.’며 소매를 걷어 젖힌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 피해를 줄여주자는 내용이다. 대본을 외우고 연출까지 하는 데 몇 해를 보냈다. 때론 눈물을 흘리며 속을 태운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고함소리도 터져 나왔다. 가슴을 열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든 일이기도 했다. 강산이 한번 바뀔만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서로 간의 기쁨이 쌓일수록 보람 또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젠 힘이 떨어진 가위개미가 되었지만 무재칠시(無財七施)로 작은 것 하나에도 부처님의 마음을 그리며 정성으로 이어 나간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하늘의 높은 뜻을 대오(大悟)했을지언정 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내 비록 이름 없는 촌로에 지나지 않지만, 세파에서 찌든 영혼을 갈고 닦는다.

자주 찾는 절집이지만 오늘처럼 맑고 밝은 기운을 가져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재잘거리는 새들의 노랫소리, 이름 모를 풀잎의 속삭임마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흘러내리는 불영계곡의 수정 같은 물이 보름달처럼 환하다. 세상을 밝히는 것은 머리에 담긴 생각이 아니라 가슴을 적시는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자비심이리라. 거북이의 거룩한 혼이 계곡에 녹아 들려오는 것만 같다.

오랜 세월 묵묵히 절집을 지키는 소방수이자, 한소식으로 불국정토를 만들어 가려는 천구도(天龜圖)의 높은 뜻에 불을 지핀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글쓰기 임할 것”수상소감


눈도 정신도 흐릿해 문화체험 수필을 어떻게 써야 할지 허덕인 날이 참 많았다. 그런데 입상소식을 듣고 나니 저 멀리 가물거리던 산이 내 곁으로 가까이 찾아온 기분이 든다. 지난 여름 무더운 날씨를 참아가며 쓴 글을 지우고 고치고 또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얻은 결과이기도 하리라.한 편의 시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2년 여의 시간을 보냈다는 어느 유명한 시인의 말을 빌려본다. 이를 생각하면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글을 쓰고 싶다. 

외형만 보지 말고 깊이 숨어있는 속살까지를 찾아내라는 깨우침이 찾아 온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준 대구일보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전직 초등교원

△실버연극 배우 겸 독도사랑교육 강사로 역임

△2016 좋은 생각 장려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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