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장려상 - 선비와 이매 / 박혜경

2018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호탕하게 웃어젖히자 선비의 턱이 들썩인다. 선비탈은 이마와 코에 찡그린 주름살이 있어 항상 고민과 상념을 달고 사는 듯하다. 세속과 결코 타협하지 않고 풍부한 학식과 위엄을 지닌 선비의 성품이 곤두선 눈썹에 박혀 있다. 굵고 뭉툭한 코를 중심으로 비대칭적인 얼굴은 보는 시각에 따라 지고지순한 학자가 되었다가 이내 욕망의 덫에서 허덕이는 속물로 변한다.

역삼각형의 얼굴과 부릅뜬 눈매에서 대쪽 같은 지조와 강인함이 뿜어져 나온다. 학문에만 몰두한 채 세상일에는 관심이 멀었음을 푹 꺼진 볼살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학식이야 부릅뜬 눈 속에 가득하지만 비쩍 마른 볼에는 배고픔이 서려 있다. 선비에게 질 좋은 가죽신은 얼룩진 놋그릇과 다름없었으리라.

선비 곁에는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비틀대고 걷는 하인 이매가 있다. 이매는 종이 아니라 하인의 신분으로 세습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신분이 달라질 수 있다. 곤두선 눈썹에 부릅뜬 눈을 지닌 선비탈과 대조적으로 이매탈은 측은할 정도로 순박한 표정을 지녔다. 눈 아래까지 길게 처진 짙은 눈썹은 두 개의 높은 산처럼 정겹다. 그 사이를 계곡처럼 주름살이 깊게 흐른다. 이매가 비틀거리며 웃어넘기자 두 개의 큰 산이 춤을 춘다.

이매탈은 찌그러진 언청이에 다리까지 절룩거린다. 코는 비틀어져 있고 턱은 아예 없다. 항상 순진하게 웃고 있는 이매탈은 턱이 없기에 가만히 있어도 피에로처럼 웃는 모습이다. 선비가 바보스런 이매를 하인으로 삼은 것은 자신의 날카롭고 모난 성격을 잘 받아주고 상쇄해줄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옷고름을 풀어헤친 채 얼굴까지 살짝 옆으로 틀어서 해맑게 웃고 있는 이매탈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나를 짓누르던 슬픔 따위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매의 웃음소리가 깻단을 털듯이 나를 흔들어 해묵은 먼지를 털어낸다. 사람들은 이매를 놀리고 비웃지만 문득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그런 바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보였던 이매는 서서히 내게 다가와 관대하고 자비심 많은 전능하신 분으로 성숙을 거듭했다.

눈썹 터럭이 올곧게 새겨진 선비탈의 모습에서 그 옛날 할아버지를 만난다. 할아버지는 양반의 고장이라는 안동에서 나고 자라셨다. 대장부처럼 몸집이 크신데다 눈썹 털이 소나무 솔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셨고 가문에 대한 자존심과 고집이 세어 집안의 아녀자들은 늘 속앓이를 해야 했다. 할아버지는 동네 대소사에 집안의 법도까지 마치 장군처럼 진두지휘하셨다. 사서삼경을 비롯하여 어려운 한문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면서도 누구네 집에 우환이 있으면 가장 먼저 달려가셨고 곳간을 털어 가난한 집을 돕기도 했다. 6·25전쟁 이후 혹독한 세월을 살아남기 위해 우리 집안은 냉철하고 학식을 갖춘 선비가 필요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기꺼이 선비탈을 쓰셨다.

할아버지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지지하고 순응해줄 온순한 이매도 필요했다. 할머니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이매탈을 썼다. 할머니는 자신의 힘들고 서러운 감정은 내팽개치고 할아버지의 말에 따라 웃고 순종하는 이매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곳간을 털어 다른 집에 쌀을 퍼다 주면 할머니는 말없이 국수를 미셨다. 할아버지가 누구네 집 장례식에서 날밤을 지새울 때 할머니는 묵묵히 들밭을 지켰다. 대쪽 같은 성품에 고집이 세고 자존심만 앞세우는 선비 할아버지 곁에는 언제나 허허 미소만 짓는 이매 할머니가 있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할아버지가 사고라도 치면 할머니는 묵묵히 그것을 수습하고 해결하셨다. 왜 그랬냐는 잔소리도 없이 그저 웃기만 하셨다. 할머니는 그렇게 할아버지의 턱 밑에 붙어 살아왔다.

학식과 예의범절의 중요성을 뼛속 깊이 새겨왔던 우리 집안은 이성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감정은 가슴속에 꽁꽁 숨겨야 하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천대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난 할아버지에게 사소한 일로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건 선비로서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의 감정은 더 깊숙한 곳으로 숨겨져 곰팡이가 피고 썩어갔다. 어느덧 감정은 몇 가지로 단순해지고 급기야 사라져버렸다. 할머니의 불안과 슬픔은 이매탈 속에 가려지고 오로지 웃음만 강요되었다.

이매탈은 여느 하회탈과 달리 턱이 없다. 턱이 없어 웃을 때면 더욱 바보스럽다. 왜 턱이 없을까? 허 도령의 전설에서 이매는 미완성의 탈로 전해진다. 하지만 선비에게는 방정맞게 말하고 촐랑거리며 대드는 양반의 종 초랭이보다 그저 조용히 웃고만 있는 하인이 필요했을 것도 같다. 선비는 자신의 날카로운 성품과 고집을 붙잡아주고 말없이 자신을 지지해줄 안전지대가 중요했을 것이다. 심성이 착한 이매는 일제강점기 때 자신의 코마저 빼앗기지만 웃음만은 끝내 양보하지 않고 지켜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에게도 턱없는 일이 벌어졌다. 큰아들과 셋째 아들을 병으로 앞세운 것이다. 핏덩이 손주들을 남긴 채 건장한 두 아들이 세상을 뜨자 할머니는 이매탈을 벗어던졌다. 꽃상여가 산언덕을 올라가는 순간 더 이상 할머니는 이매가 아니었다.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예민하게 쏘아붙였다. 둥근 산처럼 정답던 할머니의 눈썹은 날카롭게 솟아나고 눈빛도 사나워졌다. 뒤주에는 쌀가마니 대신 술병이 채워지고 죽은 아들 무덤가에서 잠이 든 할머니를 할아버지는 말없이 업고 오기를 여러 달 반복했다.

할머니는 공허한 가슴을 매일 술로 채웠지만 갈증은 더욱 깊어갔다. 무엇보다 할머니는 슬픔과 분노를 표현할 줄 몰랐다. 자신의 불안과 고통을 어떻게 통제하고 다루어야 하는지를 잃어버렸다. 할머니는 한평생 할아버지의 턱밑에 숨어 살아왔다. 가슴에 타오르는 불덩이는 그렇게 할머니의 마음을 새까맣게 태우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 곁에서 할아버지도 더 이상 선비이기를 포기하셨다. 천하를 호령하던 할아버지의 올곧은 눈썹들이 서리 맞은 부추처럼 꼬꾸라졌다. 할 말이 많았지만 할아버지는 언청이처럼 제대로 말을 쏟아내지 못했다. 할머니가 턱없는 일로 마구 쏘아붙이고 성을 내도 할아버지는 묵묵히 그냥 듣고만 있었다. 턱없는 이매처럼 허탈한 웃음만 지었다. 모진 세월은 할아버지를 이매로, 할머니를 강인한 선비로 바꿔버렸다.

우리는 누구나 탈을 쓰고 살아간다. 선비탈과 이매탈은 좌우를 비대칭적으로 만들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표정으로 읽힌다. 화가 날 때 선비탈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외로울 때 이매탈은 친구의 모습으로 다가와 어깨를 다독인다. 마찬가지로 나의 탈도 어떨 때는 선비가 되고 어떨 때는 이매가 되기도 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다양한 감정들을 읽어내고 그런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며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깡그리 잊은 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모두가 같은 탈을 쓰고 피에로처럼 웃어야 하는 세상, 상대방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든 세상에서 우리는 발버둥 치고 있다. 두려움과 슬픔은 턱밑에 숨겨둔 채 다른 사람의 탈을 쓰고 삶을 구걸하며 살아간다.

나의 탈을 쓰자. 빌려온 탈을 벗어던지고 세상 풍파에 찌들어 추해진 민낯을 깨끗이 씻고 다듬어내자. 나의 소신을 용기 있게 펼쳐나가는 나만의 민낯을 만들자. 하나의 표정으로 굳어진 탈이 아니라 때와 장소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이 그에 맞춰 탈바꿈을 해야 한다. 가끔은 턱없이 웃고만 있는 이매탈이 되고 냉철한 이성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선비탈이 될 때도 있어야 한다. 또 사랑과 애정이 듬뿍 담긴 어미탈도 되고 정의와 도덕을 지키는 시민탈도 써보자. 탈은 필요에 따라 능숙하게 변할 수 있어야 한다.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민낯, 그래서 탈은 아름답다. 가면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빌려온 것이지만 탈은 오롯이 자신의 모습이다. 옛사람들은 액운을 쫓기 위해 탈을 썼다지만 우리는 자신의 감성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행복해지기 위해 탈을 쓰자. 내면이 강하고 순수한 사람은 그 빛이 투영되어 민낯도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낙엽처럼 알록달록 물든 어여쁜 글 쓰고파”수상소감


그렇게 무덥던 여름이 언제였나 싶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붑니다. 글을 쓰는 이에게 시간은 최고의 선물인 듯 합니다. 알록달록 낙엽을 밟으면서 오늘도 글쟁이가 돼 봅니다.시간이 지나면 글도 낙엽처럼 알록달록 예쁘게 물이 들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제 글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오늘도 낙엽이 흐드러진 숲길을 걸어봅니다.

항상 힘이 돼주는 사랑하는 가족과 선·후배님, 친구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제9회 목포문학상 남도작상(수필부문)

△제9회 공무원문예대전 금상-국무총리상(수필부분 1위)

△2011년 일자리창출 우수사례 및 성공취업수기 공모전 (우수상)

△2010 신문사랑 전국 NIE공모전(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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