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의 대학들은 전쟁 중이다. 바로 대학평의원회 설치를 두고 각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지난 5월 29일자로 고등교육법이 개정되어 각 대학에서는 교원, 직원, 학생 등으로 구성되는 평의원회를 설치하고 학칙 및 교육의 중요사항을 이 평의원회에서 심의하여야 한다. 그 구성도 한쪽이 과반을 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일견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대학에 접목시키려는 교육부와 입법부의 노력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일괄적인 입법을 통해 대학에 어떤 제도를 강제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법을 입안했던 국회의원이나 교육부의 관료들 입장에서는 이 법이 대학 재단의 과도한 개입 혹은 횡포를 막고 대학 구성원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대학운영에 반영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효과적인 법안이라고 판단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대학은 제각기 상황에 따라 그 처지가 다르다. 우리 경북대학교를 포함하여 많은 국공립대학교는 이미 고등교육법이 제시하고 있는 법안의 내용보다 더 선진적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북대학교의 경우 학칙의 제ㆍ개정뿐 아니라 대학 본부 보직자의 임명, 규정의 제ㆍ개정에서도 교수들로 이루어진 교수 평의회에서 실질적인 의결권을 행사해왔다. 단순 심의ㆍ자문의 기능을 넘어서 실질적인 의회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의결권은 학칙에 의결권이라는 명칭 대신 ‘교수회평의회를 거쳐’라는 표현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그간 민주적 과정을 통해 선출되었던 거의 모든 총장이 존중해왔고, 대학의 구성원들에게도 교수들이 대학의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의 근거가 되어왔다. 지금 고등 교육법의 대학평의원회 규정은 이러한 대학의 민주적 전통을 무시하는 일방적 처사임이 분명하다.
혹자는 그냥 교수회평의회의 기능을 대학평의원회로 넘기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평의원회의 규정으로는 총장 혹은 대학본부의 독임을 견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대학의 본질인 교육과 학문적 진실의 추구에도 한계를 가진다. 고등교육법상의 대학평의원회의 설치 근거에는 ‘대학발전계획에 대한 심의’와 ‘학칙의 제ㆍ개정’, 그리고 ‘교육에 관한 중요 사항’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 모든 내용의 중심에 서야 할 대학의 구성원은 물론 교수이다. 교육의 소비자이자 수혜자인 학생과 행정을 주 임무로 하는 교직원들도 물론 어느 정도 대학운영의 참여할 수 있겠지만 이들이 대학 운영의 본질적 부분과 교수만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도 현행 대학평의원회의 규정으로는 총장 혹은 재단의 전횡을 견제하기 어렵다. 총장은 고등교육법상 교무관할권을 가진다. 이는 대학의 의사결정과 그 집행 과정에서 총장이 모든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는 ‘총장 독임제’를 의미한다. 이러한 총장의 과도한 권력 집중으로 인해 나타나는 각종 문제를 효과적으로 견제했던 세력이 교수집단이었다. 지금의 대학평의원회 관련법에서 규정된 된 바와 같이 절반 이하의 구성으로서는 이러한 견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 것임이 분명하다.
더 의아한 것은 이러한 구성이 법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등교육법이 아닌 ‘서울대학법’의 적용을 받는 서울대학교의 경우 전체 50명의 대학평의원 수에서 교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90%에 육박하는 44명이다. ‘인천대학법’의 적용을 받는 인천대학교도 30명 중 27명이 교수들로 채워져 있다. 물론 이러한 인적 구성이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법의 내용에 일관성도 없으면서 각 대학의 특수성과 역사성을 깡그리 무시한 채 전체 대학에 일괄적으로 적용시키려 하는 정부의 의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대학에서 총장 혹은 대학 본부에 의해 기존의 교수회가 가지고 있던 민주적 권한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고 그 근거가 고등교육법에 신설된 대학평의원회 관련 법안들이 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법의 무리한 일괄적 적용이 가져온 당연한 부작용이다.
우리나라의 헌법 제31조 제4항에서는 대학의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함을 규정하고 있고 이는 곧 헌법적 권리인 학문의 자유가 대학의 자치를 통해 보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학은 정부가 관여된 여러 기관 중에서 최고의 지성들로 구성된 단체이다. 간섭이 아닌 구성원들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적 운영 체계를 정착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단체인 것이다. 설사 정부가 개입을 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 할지라도 그 개입의 범위가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평의원회 설치는 고등교육법으로 이미 규정되었지만 그 과정과 내용에 관해서는 대학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정착시켜 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최인철

경북대 영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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