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운곡서원과 종오정

▲ 계림국악예술원이 매년 가을 은행나무 단풍이 절정에 이를 때 음악회를 개최한다. 마지막 순서에는 관광객과 하나가 되는 강강술래로 마무리한다.
▲ 계림국악예술원이 매년 가을 은행나무 단풍이 절정에 이를 때 음악회를 개최한다. 마지막 순서에는 관광객과 하나가 되는 강강술래로 마무리한다.

경주여행의 가장 큰 콘텐츠는 아무래도 역사문화유적이다. 여기에 경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시너지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경주 여행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하는 풍경 중에는 ‘꽃’을 단연 첫손가락으로 꼽는다.
경주의 꽃은 사계절 이어진다. 벚꽃과 개나리부터 시작해 연꽃과 황화 코스모스, 접시꽃 등의 꽃들이 역사문화유적과 어우러져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경주의 가을꽃은 단풍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늦게까지 아름다움으로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은행이다.
경주의 은행은 지역별로 절정에 이르는 시기가 다르다. 가장 먼저 남산의 통일전 은행나무, 이어서 보문단지, 서면 도리 은행나무 등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절정의 시기도 조금씩 늦어진다.
7번 국도 동천동 지역과 용담정 진입로의 은행나무 단풍도 관광객들에게 제법 알려져 있다. 경주문화원의 600년 된 은행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면서 단풍이 절정에 이를 즈음 매년 음악회를 열어 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운곡서원 은행나무 앞에서도 매년 색다른 음악회가 열린다. 천북면과 경계를 이루는 강동면 운곡서원의 은행나무는 가장 늦은 시기에 화려하게 노란 단풍꽃을 피운다.
천북면 남쪽 경계 손곡동에 귀산서사가 있고, 거기에 종오정 정자가 있다. 정자 앞 연못에는 여름철에 연꽃이 가득 들어찬다. 칠팔월엔 백일홍, 가을에는 구절초가 종오정 일대를 환하게 밝힌다.
종오정과 운곡서원은 천북면의 남쪽과 북쪽 끝에서 945번 지방도로 연결되는 꼭짓점 같은 위치에 있다. 묘하게 역사적 시간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계절을 달리해 이곳을 찾는다. 여름에는 종오정, 가을에는 운곡서원에 방문객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힐링하는 방법과 장소도 계절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최근 경주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운곡서원과 종오정, 그리고 두 문화역사자원을 잇는 도로를 따라 형성된 힐링 자원이 넉넉하게 조성되고 있다.

◆운곡서원 칠박자

▲ 운곡서원을 돌아보고 내려오면 언덕에 나무로 지은 먹거리 원두막이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 한다.
▲ 운곡서원을 돌아보고 내려오면 언덕에 나무로 지은 먹거리 원두막이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 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운곡서원에는 꼭 한 번 가볼 일이다. 수령 360년의 거목으로 솟아난 은행나무에서 노랗게 물든 낙엽이 비처럼 눈처럼 휘날리는 장면을 본다면 밀리는 차량정체의 불편쯤은 기쁜 투자가 된다.

금수강산인 우리나라에서 가을이면 어딜 가든 단풍을 보는 행복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운곡서원에서의 칠 박자가 버무려진 만족보다 큰 기쁨을 얻기란 쉽지 않다.
△1박자: 주차를 하고 내리면서 조선시대 선비가 글 읽는 소리처럼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나무를 깎아 세운 서원 안내 간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파르지 않게 돌로 다듬어 만든 계단을 오르면, 묘하게 서정적으로 흐르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2박자: 50여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대추나무가 내려다보는 마당을 둘러 오밀조밀하게 한옥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선비들의 공부방과 기개 넘치는 장군을 추모하는 향사를 올리는 건물들이 단출하게 짜여있다. 나무로 깎아 세운 대문을 밀고 들어가 보고 싶게 하지만 대문은 닫혀 있다.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고 있지만, 기품이 넘쳐나는 운곡서원이다.

▲ 경주 강동면 왕신리 운곡서원의 은행나무는 수령 360년을 넘긴 보호수다. 가을이면 단풍이 특별히 아름다워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줄을 이어 찾는다.
▲ 경주 강동면 왕신리 운곡서원의 은행나무는 수령 360년을 넘긴 보호수다. 가을이면 단풍이 특별히 아름다워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줄을 이어 찾는다.

△3박자: 운곡서원에서도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은행나무다. 경주시가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한 수령 360년을 넘긴 고목이다. 우람한 자태에서 단풍을 만들어 내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온다.
△4박자: 단풍이 가장 아름다울 때를 기다려 밀양백중놀이(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의 춤꾼과 목에 피를 토하는 힘으로 밀어 올리는 노래를 선물하는 은행나무 음악제가 널리 알려져 한 박자를 거든다. 화랑문화원 이종태 원장이 학춤을 추는 음악회의 주인공이다. 단풍과 역사를 버무려 문화의 향기를 물씬 풍겨낸다.

▲ 은행나무 앞의 전통찻집에서 대추차와 오미자차 등의 전통차를 음미하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 은행나무 앞의 전통찻집에서 대추차와 오미자차 등의 전통차를 음미하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5박자: 은행나무 바로 앞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오래된 문화재 같은 돌들로 정원을 꾸민 한옥이 있다. 전통찻집 운곡산방이다. 여기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것은 촌스럽다. 대추차·오미자차 등 전통차를 음미하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6박자: 고풍스런 서원과 산천에 둘러싸인 가을 풍경을 보고 나면 왠지 허기가 진다. 처음 올랐던 계단을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다시 계단이 있고, 허공에 2층 누각인양 나무를 솜씨 있게 엮어 만든 원두막이 있다. 이곳에서 파전이든 백숙이든 들깨 칼국수든 식성대로 시킬 수 있다. 마음도 몸도 넉넉하게 살찌우게 하는 운곡서원 6박자다.
△7박자: 마지막 7박자는 방문객이 요리하기에 달린 문제다. 서원의 고가와 고목, 비석이 전하는 오래 된 시간의 느낌과 은행낙엽비, 학춤, 원두막의 서정을 적당하게 버무려 아름다운 화음으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신선이 되어보는 시간, 아름다운 인연 운곡서원이 선물하는 칠박자다.

◆운곡서원

운곡서원은 1784년 경주 강동면 왕신리에 추원사라는 이름으로 건립됐다. 안동 권씨의 시조 권행, 죽림 권산해, 귀봉 권덕린을 향사한다.
경내에는 묘우 경덕사, 강당 정의당과 돈교재, 잠심재가 있다. 또 유연정이 있고, 외삼문 견심문이 조선시대 서원의 형식대로 입구를 지키고 서 있다. 1868년 고종의 서원철폐령으로 붕괴됐지만, 1903년 다시 지었다. 1976년 중건되어 운곡서원으로 바꾸어 부른다.
권행은 본래 신라의 김씨 성을 가진 선비였다. 고창을 지키고 있던 김행은 929년 견훤이 공격해오자 왕건에 귀의해 견훤을 격파하면서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웠다.
왕건은 신라의 신하로 고려왕을 도와 나라의 원수를 갚은 것은 권도라며 태사 벼슬과 함께 권씨 성을 내렸다. 김행은 권행이 되어 안동 권씨 시조가 되었다.
죽림 권산해는 권행의 후손으로 권진에게 수학했다. 단종애사 이후 관직에서 물러났다. 세조가 세 번이나 불렀지만, 다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성삼문 등이 단종 복위운동을 펼치다 국문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 다락 위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정조 13년 관직이 복원되고, 이듬해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귀봉 권덕린은 권행의 후손으로 경주 안강읍에서 태어났다. 회재 이언적에게 수학해 스물다섯에 문과에 급제했다. 성균관 전적과 예조정랑 등을 역임했다. 회덕, 하동, 영천, 합천 등의 수령을 지냈다. 합천군에 그의 유애비가 있다.
운곡서원은 100년 이상 된 건축물로 서원의 형식을 그대로 유지해 조선시대 문화와 건축양식 등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비지정 문화재로 남아 있다. 빨리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운곡서원은 서원의 문화재적인 가치와 함께 수려한 자연경관, 전통찻집, 원두막 등의 쉼터가 조성돼 포항, 대구, 울산 등의 원근 도시에서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다.

◆종오정과 귀산서사

▲ 문화재로 지정된 종오정. 남향이어서 대청에 앉으면 한겨울에도 따사로운 햇볕을 즐길 수 있다.
▲ 문화재로 지정된 종오정. 남향이어서 대청에 앉으면 한겨울에도 따사로운 햇볕을 즐길 수 있다.

종오정은 경주 보문단지 동편 손곡동 마을 안에 있다. 1992년 11월26일 경북도기념물 제85호로 지정됐다. 오죽과 연꽃 가득한 연못, 구절초, 둘레의 적송이 고가와 어울려 호젓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공원 같은 곳이다. 마을 안길을 따라 들어와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종오정 대청마루에 앉으면 한겨울이어도 햇볕이 따가울 정도로 집중적으로 볕이 몰려드는 따뜻한 기운이 넘치는 집이다. 이 마루에 앉으면 누구나 금방 편안하게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종오정과 귀산서사는 조선 영조 때 학자인 문효공 최치덕의 유적지이다. 최치덕이 1745년(영조 21)에 돌아가신 부모를 모시려고 일성재를 짓고 기거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학문을 배우려고 따라온 제자들이 글을 배우고 학문을 닦을 수 있도록 귀산서사와 함께 건립한 것이다.
글을 읽고 익히는 종오정 일대 부지는 3천858㎡로 아주 넓은 편은 아니지만, 아늑한 분위기에 비교적 고풍스런 건물들의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다. 공자 희옹선생 유적보존회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건물들을 위에서 보면, 지붕 평면이 공자(工字)가 되게 한 특이한 모습이다. 건물 앞에 조성된 연당에는 앞면 좌우에 향나무와 배롱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가 심겨 있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유적이다.
최치덕의 자는 희옹으로 평생을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여 70여 명의 제자를 길러 냈다. 학문 연구에도 몰두하여 ‘역대시도통인’, ‘심경집’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사후에 그의 업적이 조정에 알려져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운곡서원에서 종오정까지

운곡서원은 강동면사무소에서 형산강을 횡단하는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난 945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왕신저수지 중간쯤에서 동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면 금방이다.
종오정은 경주 보문단지 뒤편 손곡동 마을 안쪽 따뜻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종오정에서 운곡서원까지는 승용차로 천천히 운전해도 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조선시대의 기운이 우러나와 넉넉한 마음이 되게 하는 두 곳을 잇는 길에 많은 볼거리, 체험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있다.
종오정에서 운곡서원 방향으로 나오면 바로 경주생활체육공원이 넓은 부지에 자리하고 있다. 전국중학생야구대회가 매년 열리는 경주베이스볼파크 간판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이어 경주승마장이 있다. 말 등에 올라 화랑의 기개를 체험하게 하는 곳이다.
새로운 건물의 냄새가 물씬물씬 풍기는 펜션들이 세련된 이름으로 간판을 달고 있다. 경치가 좋은 지역이라는 해석을 하게 한다. 소리지와 이름 모를 저수지들이 길옆에 듬성듬성 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세월을 낚는 강태공들은 호수를 끌어안고 뒤태를 보여준다. 더 심심한 사람들은 길옆에 주차하고 그들의 성과물을 구경하기도 한다.
호수 건너편 카페와 담을 사이에 두고 십이지신상과 첨성대, 근엄한 불상을 깎아 세운 석물공장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파3 골프장이 두 곳 있고, 신개념의 골프장도 한창 조성 중이다. 주변 식당가에서는 벌써 골퍼들을 유혹하기 위한 메뉴 개발에 고심하고 있다.
지방도를 따라 길게 화산 숯불단지가 조성돼 있다. 차창을 열어두고는 쉽게 지나칠 수 없게 한우 고기 익는 냄새가 유혹한다.
왕신예술촌, 왕신저수지의 수상스케이트장, 곳뫼갤러리, 목공예체험장, 허브농장 등 길 따라 힐링 자원이 넘쳐나고 있다. 최고의 힐링로드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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