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워

진보ㆍ좌파도 ‘이게 나라냐’하고 보수ㆍ우파도 ‘이게 나라냐’하고 있다. 졸지에 멀쩡하던 대한민국이 나라가 아닌 나라로 돼 버렸다. 왜냐하면 중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작고, 보혁(保革)세력이 번갈아 가면서 한 번씩 나라를 부정했으니 나라답지 않은 나라가 돼 버린 것 아닌가.
‘이게 나라냐’의 시작은 2016년 후반기 진보ㆍ좌파에서 국정농단 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며 보수ㆍ우파정권인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리면서 시작됐다. 그때 나온 하야가(下野歌)의 노래 제목이 ‘이게 나라냐 ㅅㅂ’이다.
물론 국정농단의 죄목 중에는 억울한 것도 많다. 요즘 말로 치면 페이크(fakeㆍ가짜)뉴스 횡행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이라는 무당의 힘을 빌려 신정(神政)정치나 무당정치를 했다거나 청와대서 굿판을 벌였다는 등등이 그렇다. 어떻든 역사가 돼 버렸다.
그런데 진보ㆍ좌파가 ‘정권’을 잡은 지 2년도 되지 않아 벌써 보수ㆍ우파진영에서는 ‘이게 나라냐’는 고함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하야’라는 소리도 나오고 어찌 된 셈인지 여권 편에 섰던 사람들 입에서마저 이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현재의 진보ㆍ좌파들이 급진적인데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지금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만 해도 그렇다. 기업이 돈을 벌어야 월급을 주는데 거꾸로 월급을 더 올려주면 기업이 돈을 더 번다는 식 아닌가. 게다가 견제를 맡은 야당세력도 너무 약하다.
북한핵의 처리 문제도 그렇다. 북한의 비핵화와 제재해제가 국제사회와는 거꾸로 가고 있다. 북한측 입장과 비슷하다. 그러니 보수ㆍ우파의 눈에는, 특히 전문가들 눈에는 ‘이게 나라냐’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수ㆍ우파에 속하는 일반국민 눈에 진짜 ‘이게 나라냐’로 널리 비친 것은 그렇게 논리적인 사안들이 아니다. 북한의 리선권 조평통위원장의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발언과 같은 일상적 사건들이다. 발언 하나만 볼 때는 북측이 사과한다면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를 두둔하는 여권의 발언들은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문화 차이’라든가 ‘농담’이었다든가 하는 소리도, 턱도 없는 변명들도 그렇다. 국민을 속이려 드는 듯한 땜질식이기 때문이다. 우선 분위기가 농담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당시 조명래 통일부장관도 국회서 공개적으로 “북측으로는 남북관계에 속도를 냈으면 하는 게 있다”고 그 배경과 분위기를 설명하지 않았던가.
문화의 차이도 그렇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쪽이 우리보다 훨씬 더 유교적이라고 한다. 그 정도면 북한서는 주먹이 날아간다고까지 했다.
더욱더 국민을 화나게 하는 것은 냉면 발언을 나쁘게 해석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외면하거나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라는 여당 최고위원의 말이다. 양심 없는 사람만 군에 가는 것으로 오해할만한 판결을 한 대법원의 논리와 비슷하다. 평화프로세스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다른 방법은 깔아뭉개겠다는 심보 아닌가.
무조건 평화를 위해서는 모든 굴욕을 참으라는 소리와 무엇이 다른지 이해가 안 간다.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겠다고 하면 항복만이 있을 뿐이 아닌가. 이제 여권은 남북관계에서 실패공포증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때인 것 같다. 오죽했으면 중국의 학자들한테마저 한국은 너무 서둔다는 지적을 받았을까.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다.
더욱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은 백두칭송위원회의 등장이다. 백주 대낮에 서울 한복판이라 할 수 있는 광화문에서 ‘김정은 만세’를 외친 것도 문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한 것은 ‘분단 적폐세력이 감히 준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그들의 선언문이다. 이들은 진짜로 전 주영북한공사 태영호를 체포하겠다며 공갈을 쳐서 강연을 못하게 만들었다. 표현의 자유를 막아, 민주주의를 파괴한 것이다. 그래도 당국은 아무런 조치가 없다. ‘이게 나라냐’ 소리 더 듣기 전에 나라답게 일을 하는 것이 여권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좋다.

서상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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