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진 내면의 세계는 의식적으로 진실을 드러내지 않은 한 파악하기 쉽지 않다. 언어는 의식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쓰이지만 언어 자체가 가지는 모호함으로 오히려 진실을 향한 접근을 막을 수도 있다.
더불어 인간의 몸짓을 비롯한 여러 행위적 요소들 또한 의식적 실체와 가식이라는 양면적 표현행위가 가능한 까닭으로 우리는 늘 진의 파악에 안간힘을 쓴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은 이러한 인간 행위에 대한 진의 파악을 위해 많은 이론과 모델을 제시해 왔다. 의식과 무의식의 연결고리를 찾고 외면을 통한 내면을 추론해 나가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한다.
학창시절 삼삼오오 둘러앉아 ‘진실게임’을 하곤 했다. 상대방의 드러내지 않은 진의를 알아내고자 질문자의 의도는 보다 정교하고 허를 찌르는 내용의 질문으로 답을 유도하고자 한다.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벌칙이 뒤따랐고 그에 따라 공수 선공이 바뀌는 진실게임은 ‘무응답’과 ‘무작위’가 진의를 대신한다고 믿게 한다.
‘몇 가지 거짓에 사실을 섞여 말하여 거짓과 사실을 구분하기 어렵게 하는 게임’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나타나듯이 ‘진실게임’은 이미 거짓이 전제된 상황 속에서 진실을 짐작할 뿐 그 어느 것도 진실 자체는 아니다.
수년간 지속된 세월호 사건과 최근에 이슈화된 사립유치원 지원금 문제, 광주항쟁과 국방부 장관의 사과 등 수많은 문제들이 불거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진실게임’이 떠오르는 것은 필연이 아닐까 한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현재 정권의 정당성은 전임 두 대통령을 ‘죄수’라는 이름으로 단두대에 올렸다. 정의란 어떠한 상황과 그 어떤 권력자에게도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 가치란 점을 기치로 내세운 듯하다.
그것을 촛불 혁명이란 이름으로 이제는 국민들 스스로 축제의 장으로 기리기도 한다. 단호하고 명쾌한 흐름처럼 보인다. 새로운 역사를 세워나가는 오직 정의만을 내세운 혁명의 역사처럼 비춰진다.
하지만 우리가 주시해야 할 점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전라도와 경상도의 동서 지역갈등이 어느새 신구 갈등과 좌파와 우파라는 이념적 갈등으로 고착화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에 대한 진의 파악은 애초에 무시하고 접근한다. 오직 절대선의 입장에서 악을 응징한다는 이분법적 접근으로 총칼 대신 펜과 컴퓨터 자판을 통해 SNS라는 전쟁터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진실은 말과 글로써만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표현되지 않은 내면의 의식이 진정한 사실임에도 우리는 말과 글 그리고 표현된 행동에 전부를 기대하는 오류를 범하고는 있지 않은가 싶다.
진실은 어느 곳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까닭은 여기서도 나타난다. 정치와 현실 경제의 문제는 연예인들에게 던지는 ‘아니면 말고’식의 댓글처럼 접근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영어 수학 과목 못지않게 사회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대한 가르침이 더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이념적 접근으로의 교육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을 통해 개개인의 생각을 묻고 상대방의 진실을 찾아 나가는 토론ㆍ모둠식 교육이 필요하다.
김시욱

영어전문학원 에녹(Enoch)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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