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죽장사 오층석탑

▲ 죽장사 경내에 있는 선산죽장동 오층석탑. 국보 제130호다. 높이가 10여m나 되며 현존하는 오층석탑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 개나 되는 돌이 쌓여 만들어진 이 탑에는 서로 먼저 탑을 쌓겠다며 내기를 한 남매의 전설이 서려있다.
▲ 죽장사 경내에 있는 선산죽장동 오층석탑. 국보 제130호다. 높이가 10여m나 되며 현존하는 오층석탑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 개나 되는 돌이 쌓여 만들어진 이 탑에는 서로 먼저 탑을 쌓겠다며 내기를 한 남매의 전설이 서려있다.

죽장사에는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제130호 오층석탑이 있다.
이 석탑이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탑의 높이가 10여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탑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오층석탑 가운데 그 규모가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다리 없이는 정상부까지 올라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대석부터 정상부인 노반까지 수백 개의 석재가 쓰였을 것으로 추산된다.
규모를 고려하면 한 개인이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배경과 국력, 불교의 위치 등을 고려하면 불교미술계의 최초 정점인 통일신라시대 건립됐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 탑에는 두 남매의 전설이 전한다.
통일신라시대 두 남매가 서로 재주를 자랑하다가 오빠는 다른 곳에서, 누이동생은 죽장사에서 석탑을 먼저 세우는 내기를 했는데, 누이동생이 먼저 이 오층석탑을 쌓았다고 전한다.
오층석탑은 안정적이면서도 장엄하지만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자애로운 큰 스님의 모습이랄까.
어떤 이는 이 석탑을 보고 “부드러운 힘이 충만해 온종일 바라보아도 지루하지 않다”고 표현한다.
신라불교가 처음 전해진 구미(일선, 선산)의 불교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주변 관광지

죽장사는 현재 구미시 선산출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인근에 선산 재래시장이 있다. 2일과 7일에 전통시장이 선다. 경북 도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축에 속하는 오일장이다.
선산 재래시장에서 조금 더 가면, 조선 시대 관아였던 선사 객사(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21호) 와 선산 향교가 있다.
또 조선전기 문신으로 사육신의 한 사람인 단계 하위지 선생 유허비(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36호)와 묘가 죽장사 부근에 있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자문=권삼문 전 구미시청 학예사
사진=한태덕 전문 사진작가






[01번 사진]기획-신라불교 초전지 구미-4)옛 영광은 어디가고 흔적만 남아-죽장사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비봉산 품에 앉은 죽장사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조선 중종 25년인 1539년까지 존속한 후 폐허가 됐다가, 1954년 암자가 들어서고 명효스님이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중창했다. 오층석탑 뒤로 보이는 건물이 대웅전이며 ,왼쪽은 종무소 역할을 하는 원각당이다.
[02번 사진]기획-신라불교 초전지 구미-4)옛 영화는 어디가고 흔적만 남아-죽장사
오층석탑을 배경으로 멀리 금오산과 작은 봉오리들이 보인다. 죽장사는 답답했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만큼 탁 트인 전망을 선물한다. 멀리 감천을 따라 펼쳐진 선산들도 눈에 들어온다.
[03번 사진]기획-신라불교 초전지 구미-4)옛 영화는 어디가고 흔적만 남아-죽장사
죽장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대신 사찰 입구를 표시하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불화가 그려진 깃발을 걸어 두는 기둥으로 선사시대의 솟대나 일본 신사의 도리와도 성격이 유사하다. 죽장사의 당간지주는 경내에서 600여m 떨어진 대나무밭에 외롭게 서 있다.
[04번 사진]기획-신라불교 초전지 구미-4)옛 영화는 어디가고 흔적만 남아-죽장사
죽장사 경내에 있는 선산죽장동 오층석탑. 국보 제130호다. 높이가 10여m나 되며 현존하는 오층석탑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 개나 되는 돌이 쌓여 만들어진 이 탑에는 서로 먼저 탑을 쌓겠다며 내기를 한 남매의 전설이 있다.
[05번 사진]기획-신라불교 초전지 구미-4)옛 영화는 어디가고 흔적만 남아
죽장사 오층석탑 오른편에 있는 주춧돌. 최근 절을 중창하는 과정에서 나온 주춧돌을 모아 둔 것이라고 한다. 주춧돌의 크기가 보통 사찰 주춧돌의 2배에 이르는 것도 있어 당시 죽장사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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