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간 관계도 본질적으로 개인 간 관계와 그 근간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인정사정이 없다는 점이다. 개인 간 관계는 의리나 측은지심 등 사감으로 인해 냉정함을 잃기 십상이다. 국가 간 관계는 인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서로 최선을 다하여 자국 이익을 주장하고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전략이 노출되면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전략 노출은 자기 패를 다 보여주고 포커를 치는 것과 같다. 역사에서 사술이나 협박을 서슴지 않은 경우마저 쉽게 찾을 수 있다. 뒤통수부터 치고 나서 협상하기도 한다. 수가 틀리면 주먹다짐으로 간다. 심지어 전쟁의 명분을 쌓고자 절차적으로 협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전쟁은 자국 제일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국가 간 협상의 결과물인 조약이나 협약은 관계 국가들의 교집합이 맥시멈이 되는 지점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먼저 그런 이상적인 답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자기 나라의 이익이 극대화되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정한 협상을 진행하기란 매우 어렵다. 국제질서가 잘 정비되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언제든지 무법자가 나타나 판을 깰 수 있다. 무법자를 강력히 응징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이 종국적으론 전쟁밖에 없고, 전쟁은 군사력이 우위에 있을 경우만 선택 가능하기 때문에 힘센 나라에겐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무법자가 핵무기 같은 치명적 무기를 보유한 경우에도 속수무책이다. 물론 국제연합과 같은 중재 기구가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그 통제력에 한계가 있고, 힘센 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그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앞으로 그 한계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를 돌아봐도 자국제일주의는 전혀 새롭지 않다. 다른 나라를 생각해주는 나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도 없다. 다른 나라를 지켜주는 나라가 있다면 그게 자기 나라에 이익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동맹관계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벗도 없다. 개인 간에 있을 수 있는 애정이나 연민 같은 가치는 국가 간에는 기대난망이다. 가족과 민족에 대한 공동체 의식도 국가라는 강력한 공동체 앞에선 무력하다. 국제관계는 비정하고 냉엄한 정글이다. 최근의 동북아 정세를 처음부터 옹골차게 대처해야 하는 이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만국에 대한, 만국의 투쟁관계’, 그것이 국제관계의 본질이다.
자국제일주의는 그 나라의 여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여론의 바탕은 물론 인간의 본능적 이기심이다. 국민은 자기 나라에 100% 유리한 결과를 추구한다. 중용을 취한 협상이라도 비난받기 일쑤다. 양보한 부분만 보이기 때문이다. 이기심이 자국제일주의 포퓰리즘으로 바뀌면 더욱 견고하게 변신한다. 자국제일주의로 무장한 정부는 국익을 위하여 일반적 규범을 초월하는 전략을 짤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공개적 양해가 어렵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를 뭉개고 비밀리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국가기밀은 개인 비밀보다 훨씬 더 비도덕적일 수 있다. 때로는 비인간적이고 불법적이다. 그래서 더 은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가를 제약하는 법망은 촘촘하지도 견고하지도 않다. 첩보영화에서 늘 벌어지는 국익을 위한 불법과 탈법을 있을 법한, 부득이한 일이라고 쉽게 용납하며 즐긴다. 영화에서 이상할 정도로 잘 수용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선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성인군자인 양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불가사의한 것은 그러면서도 100% 자국제일주의의 실현을 원한다는 것이다.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가장 이득이 되는 결과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유토피아로 가야 한다.
얄타협정, 카쓰라태프트밀약, 러일협약, 조러비밀협약 등은 우리나라의 주권을 침해한 비밀협약이다. 알려지지 않고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기가 막힌 협약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에 국권을 침해한 국가를 향해 목청을 높여 아무리 비난해 봐야 말짱 도루묵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사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당하지 않으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 국가 간 문제를 도덕적 감상적인 생각으로 접근했다간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국제관계에선 정직함보다는 영악함이 최선의 방책이다.

오철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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