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봉정치부문 에디터

대구ㆍ경북이 끝 모를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박근혜ㆍ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으로 대구ㆍ경북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데다 한국 정치의 본산이랄 수 있는 지역 정치권이 함께 추락하면서 심리적 공황상태를 맞고 있다.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가슴에 적잖게 멍울을 남기긴 했지만, 지역민들의 자긍심이 이만큼 상처 입은 적도 별로 없던 것 같다.
보수세력이 다시 응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역 정치권은 미동도 없다. 자숙하고 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다. 이럴 때에 튀어봐야 눈총만 받기 십상이라는 위기 본능이 작용한 때문인 듯하다.
게다가 지역 정치권에는 밉든 곱든 한국 정치판을 좌우한 선배들의 뒤를 이을 재목들이 보이지 않는다. 될성부른 떡잎은커녕 올라오려는 싹마저 자취를 감췄다. 인재 고갈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역 정치권의 앞날이 캄캄하다. 후진 양성에 소홀했다고 잘나가던 선배 탓만 할 수도 없다. 모두 자승자박이다.
문제는 이런 난국을 헤쳐나갈 특별한 방안도 해결사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런 판국에 경제라도 받쳐주어야 하는데 경제마저 총체적 난국이다. 바닥을 기고 있는 지역 경제 상황은 정부의 경제정책 실책 때문이라며 애써 자위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의 상징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은행의 추락과 금복주의 도덕적 해이는 대구ㆍ경북민의 자존심에 심한 생채기를 내고 말았다.
대구은행은 1967년 지역 경제인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이래 50년 만에 총자산 50조 원(2018년 6월 말 현재)에 이르며 연 1조 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대구지역 최대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제일모직과 코오롱 등 대기업들이 대구를 떠난 마당에 어느덧 지역 대표기업이 됐다. 내세울 만한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제조업도 아닌 서비스업종에서 지역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이런 대구은행도 방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전 DGB금융 그룹 회장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부터다. 지역 대표기업의 자긍심은 온데간데없고 도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이후 성추행과 채용 비리 등 각종 사건ㆍ사고가 줄을 이었다. 전임 회장은 결국 사법당국에 구속됐다. 지역 초유의 일이다.
금융당국은 외부 인사를 새 수장으로 앉혔다. 하지만 DGB금융은 아직도 지난해부터 계속된 각종 사건ㆍ사고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 회장이 들어섰지만, 조직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대구은행은 창사 이래 가장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정부는 1973년 소주 시장의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한 개 도(道)에 하나의 소주 업체만을 허용(1도 1사)했다. 해당 지역의 주류도매업자는 자도주(自道酒)를 50% 이상 구입하도록 했다.
이 같은 정부의 자도주 보호 정책에 편승, 금복주는 한때 지역시장 점유율을 95% 넘게 차지하며 대구ㆍ경북을 대표하는 소주가 됐다. ‘금~금~ 금복주, 최고 소주 금복주, 한 잔 술에 복이 오고 한 잔 술에 건강 찾네…’ 아직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CM송이 귀에 맴돈다. 당시 주당들에겐 소주하면 으레 금복주로 통했다. 지역민의 절대적인 성원과 아낌 속에 성장해온 금복주도 지역민의 신뢰를 무참히 짓밟았다.
금복주는 지난해 직원 성차별과 부사장의 수뢰 구속 등으로 지역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시민단체의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회사 측의 대 시민 사죄와 노력으로 잊힐 무렵에 또다시 말썽을 일으켰다. 냄새 나는 소주를 팔아 주당들의 분노를 사고 외면받게 된 것이다. 주정이 문제가 됐다. 회사 측은 즉각 함께 생산된 소주를 회수하고 파문 차단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떠난 주당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정치와 경제의 동반 추락 악재 속에서도 ‘강 건너 불 보듯’할 수밖에 없는, 애먼 지역민들의 가슴만 타들어 가고 있다. 이러다가 끓는 물 안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끓는 냄비 속의 개구리’ 신세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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