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정치인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법원이 정치적 판단서 자유로운지상황을 어떻게 돌파하는지 관

사법농단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구속했다. 법원의 잇따른 영장 기각으로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의지가 꺾일 수도 있었는데, 법원의 영장 발부로 국민적 의구심은 일단 해소했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30여 가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다. 재판의 독립이라는 신성한 민주주의 원칙을 검찰이 지켜내겠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으로부터 살 1파운드를 걸고 친구의 혼수금을 빌린 안토니오가 기한을 어겨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남장한 재판관 포샤가 등장한다. 그녀는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말아라”는 선고로 안토니오를 위기에서 구해 낸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이야기다. 재판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신의 한 수가 되기도 하는 모양.
조선시대, 들에서 일하던 농부끼리 시비가 일어났다. 이 싸움을 빌미로 한 사람이 죽자 상대 사내가 살인죄로 고발됐다. 그는 글 잘 하는 선비에게 변론을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선비가 글을 써서 원님에게 탄원했다. 물론 원문은 한문이었고 풀어쓰니 글맛은 떨어지지만 내용은 이랬다. “까마귀는 2월에 날고 배는 9월에 떨어졌다. 그것이 까마귀의 죄인가, 병 때문인가?” 글을 읽은 원님은 무죄를 선고하고 사내를 방면했다.
문제는 다음에 있었다. 무죄로 풀려난 사내가 글을 부탁한 선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괘씸하게 생각한 선비가 다시 글을 원님께 올린다. “몽둥이로 장막을 치니 장막은 뚫어지지 않되 그릇은 깨어졌다. 칼로 물을 베었으나 자국은 없고 고기는 죽었구나.” 글을 읽은 원님은 사내를 다시 잡아 들였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벌금 150만원을 구형받았다. 벌금 100만 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시장 직위를 잃게 된다.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는 검찰의 150만원 구형을 놓고 처음부터 시장 직을 빼앗지는 않겠다는 사인이나 다름없다며 검찰의 무딘 칼을 비난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선고형량이 구형량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 이런 재판의 통례이기 때문이다. 혹 법원이 구형량을 넘어서는 선고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거 이후 지금까지 넉 달 동안 권 시장은 그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를 여러 군데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더구나 3심까지 허용하는 재판에서 대법원까지 갈 경우 벌금 100만원을 넘어설 가능성은 낮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수많은 재판 결과가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권 시장은 재판기일을 연기해가며 변호인 선임과 변론 등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와 함께 당선 이후 최근까지 권 시장이 보인 행보도 검찰의 구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는 열과 성을 다해 대구시정을 이끌고 펼쳤다. 개인적으로 불효를 들먹이며 오로지 시민 행복을 내걸고 시정에 올인하는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줬다. 재판에도 충실하게 임했다. 재판 전에는 “모두 내 탓이다”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고 법정에서도 선처를 구하는 깨끗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권 시장이 받고 있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권 시장도 인정한, 다툼의 여지가 없는 팩트다. 공직선거법 제 255조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권 시장은 법 60조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와 86조(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금지)를 두 번씩이나 거푸 위반했다.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한 사법농단이 심판받고 있는 작금이다. 법관은 교과서에서 말한 대로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일이다. 어떤 정치적 고려나 외압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법원은 야당 정치인의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문재인 정권의 정치적 부담을 떠안아야 할 처지. 전국 광역 자치단체장 중 대구와 경북만 야당이 차지한 현실에서 권 시장의 선거법 재판에 쏠린 눈을 말하는 거다. 과연 법원이 정치적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상황을 어떻게 돌파하는지도 국민들에겐 관심사항이다.

이경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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