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호주필

조선조 ‘조광조’ 하면 개혁정치가 떠오른다. 그 개혁정치 중 하나가 과거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현량과의 실시다. 조정이 추천하면 임금이 직접 면접하여 뽑는 제도이다. 이 혁신정책에도 흠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청렴하고 공정하다는 평을 듣던 안당은 훈구파이면서도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적극 협력한다. 그런데 그러한 그의 세 아들이 현량과에 합격한다. 세 아들 동시합격은 조선조 통틀어 이것이 유일하다. 당연히 사림파의 보답이 아니었겠느냐 하는 의구심을 낳았다. 아니면 ‘아들 이기는 장사 없다’는 네포티즘(nepotism·연고주의)일지도 모르겠다. 설사 아들들의 학문이 뛰어났다고 해도 지금은 물론 당시도 좋게 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신사무옥 때 이 사건도 하나의 죄목으로 뒤집어쓰게 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말 인재 등용에는 왕도가 없는 모양이다. 혁신책의 하나로 실시한 현량과에도 흠이 생기는데 하물며 대통령이 1년5개월 전에 선언한 ‘비정규직 제로’의 하나로 실시하고 있는 정규직화인 만큼 잡음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성검사에서 떨어진 민노총 전 간부의 아내는 채용방식을 바꿔 합격시키나 하면, 서울교통공사는 직원 1만7천84명 중 1천912명(11.2%)이 친인척관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친인척 1천912명 중 108명은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한 뒤 올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갖가지 채용비리 관련 루머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의 지시대로 채용비리를 전수조사하면 나오겠지만 만약 사실로 밝혀진다면 시중에 떠도는 ‘노조에 의한’ ‘노조를 위한’‘노조의 나라’가 허언이 아닌 것이 된다.
노사협약에서 고용세습을 명문화한 기업도 많다. 2015년 고용노동부가 전수조사를 한 결과 694곳에서 세습조항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도 절반 정도는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채용비리 중 특히 고용세습이 안 되는 것은 헌법상의 평등권 침해는 물론 고용정책기본법과 직업안정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이는 2013년에 있었던 울산지법의 판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조합원 사망 시 유족을 고용하도록 한 현대차 단협조항은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낳아 우리 사회의 정의 관념에 배치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느 취업준비생의 절규는 더욱 처절하다. “사회적 평등을 주장하는 노조가 정작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고용세습을 서슴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전제한 뒤 “공정하게 경쟁해서 취직하려는 입장에서 보면 저들이야말로 진짜 금수저란 생각에 좌절감마저 든다”고 했다. 민주주의 정신에 대한 근본적인 훼손을 지적한 것이다.
또 문제는 지금까지 선진국들이 경제위기를 해결한 정도는 모두 하나같이 노동문제 해결에서 그 길을 찾았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대처리즘, 독일의 하르츠개혁,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 아일랜드의 사회연대협약 등이 그렇다. 모두 정책적 성공이나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노동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는 성과급 연봉제 철폐 등 거꾸로 가고 있다. 노동개혁의 실패로 비실대고 있는 프랑스 경제를 살리려 애쓰는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개혁을 눈여겨봐야 한다. 80년간 난공불락이던 철도공사 노조를 누르고 종신고용제 폐지를 관철했다. 공무원 감축도 과감히 실행하고 있다. 2020년엔 중앙정부에서만 무려 1만 명을 줄인다는 것.
그 대신 그의 지지율은 당초 64%에서 지금은 31%로 떨어져 반토막이 됐다. 실업률을 10.1%에서 9.4%로 내렸음에도 그렇다. 아마 그는 집권 대신 그의 조국을 택한 슈뢰더 독일총리를 벤치마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권보다는 국가의 미래를, 오늘보다는 내일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역사에서 답을 찾으려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고용세습은 반민주적이고, 반이성적이며, 적폐의 상징이다. 국가 발전의 장애 요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노조공화국’이라 해도 그렇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고용세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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