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해주려 노래 연습하다보니축복 받는 쪽은 오히려 나 자신아, 멋들어지게 불러줘야지

평소에 언니 동생 하며 지내는 라디오 방송 김숙영 아나운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곧 있을 남편 생일에 참석해서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한다. 내겐 좀 황당한 부탁이다. 나는 가수가 아닐뿐더러 노래를 정말 못하는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노래방 갈 일이 있을 때도 6,70년대 노래로 분위기를 깨는 게 나다. 내 노래 실력을 모르지 않는 사람의 부탁이라 이유를 안 물을 수 없었다. 왜 그런 부탁을 나한테 하느냐고. 김 아나운서의 대답이 사람을 거절할 수 없게 만든다. 노래 잘하는 사람은 많지. 그런데 정말 축하해 줄 사람의 노래를 듣고 싶은 거야. 동생 마음을 내가 아니까 거절하지 말고 한 곡 불러줘.
김 아나운서 남편은 맹인 목사다. 왕년에 가수활동을 한 전력도 있다. 김 아나운서는 성악가다. 틈틈이 노인 복지관을 찾아 장구춤도 보여주고 노래도 부른다. 목소리와 마음 씀이 정말 고운 사람이다. 김 아나운서는 재혼으로 김 목사를 만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김 아나운서가 가진 것 없는 맹인 목사 남편과 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녀는 남편을 의지하고 받들며, 주변에도 사랑을 실천하며 산다. 오갈 데 없는 사람을 재워주고, 차비까지 들려 보낸다. 하룻밤 묵어가라고 불러들인 사람 중에는 그대로 주저앉아 사는 사람도 이미 여럿이다. 이들은 몇 년째 한솥밥을 먹으며 식구처럼 지내고 있다. 여섯 살 때 길에 버려진 아이를 만났다. 김 아나운서는 이 애를 애지중지 길렀다. 지금 그녀는 결혼하여 아이 엄마가 되었다. 둘은 서로를 엄마와 딸이라 부른다. 김 목사는 어릴 때 열병으로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고통에 주저앉지 않고 점자 독서에 매달렸다. 그는 피아노를 치고 기타를 다룬다. 노래도 잘하고 유머도 수준급이다. 목회도 열심이다. 보통 맹인들의 생애가 장애 스트레스로 인해 길지 않다고 하는데 김 목사는 칠순을 병 하나 없이 맞았다. 있는 것 다 내어 주고 사는 삶이 평안하기만 할까 싶지만 그들은 참으로 평안히 산다.
김 목사가 칠순을 맞아 생일잔치 겸 콘서트를 마련한다고 한다. 그 자리에 축가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이런 걸 진퇴양난이라고 하나보다. 거절하자니 축하의 뜻이 희석되는 거 같고 받아들이자니 내 능력 밖이다. 나는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남의 잔치에 가서 재롱이나 부릴 나이는 아니지’ 하는 생각 뒤로, 칠순 잔치보다도 두 사람의 사랑이 귀하게 느껴져서 나는 사랑노래를 불러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일주일이 지났다. 무슨 노래를 할 것인지 알려달라고 했는데 나는 아직 적당한 노래를 찾지 못했다. 바쁜 와중에 짬짬이 유튜브를 틀어놓고 그들의 사랑에 어울릴만한 노래를 고르는 중인데, 좋은 노래는 많지만 내 성량의 한계에 안 걸리는 노래가 없다. 게다가 나는 갑상선 수술로 성대를 무리하게 사용할 수가 없다. 목이 곧 아파오기 때문이다. 고음이 들어간 노래를 피해야 하고, 가사는 따듯하고 아름다워야 하고, 리듬은 조금 빨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노래를 고르지만 쉽지 않다. 또 너무 철 지난 노래는 아무래도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 있겠다 싶어 너무 오래되지 않은 익숙한 곡으로 좀 신나는 댄스곡을 찾으려고 고심한다. 내가 살면서 별로 해본 적 없는 고민이라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글을 쓰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노래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일주일 내내 나는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를 찾아 듣는 중이다. 장윤정의 신나는 트로트, 해바라기의 선율 고운 발라드, 조용필의 비장감 있는 노래, 노래방에 단골로 등장하는 국민가요들…. 특히 좋아하는 장르도 특별한 기호의 가수도 없는 나는 닥치는 대로 이 곡 저 곡 불러본다. 아직 노래는 선택하지 못했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내 마음이 왜 이리 좋은지 말이다. 나는 종일 이 노래 저 노래 불러보고, 운전하면서도 어린애 옹알이하듯 노래를 읊는다. 주말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와 가까운 비치에 나가 바다를 향해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 사랑이 차오르는 것이다. 나는 요즘 까닭 없이 매사 즐겁다. 평소보다 수다가 늘었고 웃는 일이 많아졌다. 내 노래를 고르느라 애들도 덩달아 신났다. 나는 식구들 앞에서 예선전을 치른다. 내가 노래 한 곡을 불러 재낄 때마다 우리 집엔 한바탕 폭소가 터진다.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즐거워진다고들 한다. 다른 사람을 축하하려고 노래 연습을 하다 보니 축복을 받는 쪽은 오히려 내가 되었다. 한 줌 사랑을 전하려다 한 드럼의 사랑을 내가 받는다. 노래 한 곡 골라서 적당히 들러리나 서주려던 마음이 적극성을 띠면서 변해간다. ‘아, 멋들어지게 불러줘야지.’

이성숙

재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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