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대입제도 개편을 놓고 국민의 관심이 뜨거웠다. 당시 공론화위원회에서는 정시를 우선할 것인가 수시를 우선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실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그 누가 나선다 하더라도 대입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을 깨끗하게 해결할 수 없다. 문제의 시발점이 대입의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대학만 들어가면 만사가 해결되는 우리 한국이 처한 독특한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모든 관심은 대학의 이름에 쏠려 있다. 이는 ‘우리 아이가 대학에서 어떤 교육을 받아 어떤 인재로 성장할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어떤 대학을 졸업하였는가’의 문제가 그 아이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인재에 대한 관점은 현재의 모습과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과거 한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이러니 정부도 정치권도 고교 교육을 통해 대학에 입학하는 것까지만 관심을 기울이지 정작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대학 자체의 교육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대입제도를 개편한다고 해서 과열된 대학입시경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순진한 이야기라 아니할 수 없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최근 서울의 집값이 어마무시하게 올라버렸다. 서울살이를 접고 대구에 정착한 지 이제 14년째이다. 처음 경북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을 때 부모님이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요즈음 가끔 허무감과 무력감에 빠져드는 때가 있다. 난 이제 아파트 대출도 다 갚고 살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년을 해도 대구에서 계속 살아야 할 것 같다. 내 집을 팔아도 서울 가면 전세 보증금은커녕 월세 보증금이라도 될까 싶다. 물론 대구도 정이 들었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내 일을 사랑하기에 큰 불만은 없다. 하지만 부모님 형제 친구들도 다 서울에 있기에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 개인의 문제를 떠나 서울의 가치가 그만큼 올라가고 지방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재화와 용역은 정해져 있는 것이기에 어느 재화의 가치가 상승하였다면 다른 쪽 재화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한 것이다.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부자가 되고 지방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괜찮은 수입도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소외되었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인가 국가의 문제인가? 나라 전체가 심각한 문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대표인 이해찬 의원이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해 언급하며 지방경제에 활력을 줄 정책을 펴나가겠다고 한 바 있다. 앞에서 조금은 이질적인 대학입시 문제와 수도권 부동산 문제를 언급한 이유는 바로 그 해결의 단초가 이 지방을 되살리는 것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괜찮은 먹거리들도 직업도 모두 서울에만 몰려 있고 그러다 보니 서울에 있는 대학들만 더 명문으로 성장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어떤 입시정책도 부동산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나는 지방을 되살리는 정책의 시작이 지방의 거점 국립대학을 이전의 그 명문 대학들로 되돌려 놓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을 가던 무렵 혹은 그 이전의 세대들에게 경북대학교는 서울대학에 못지않은 지역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지역의 인재들도 구태여 서울로 가기보다는 경북대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그러할까? 일단 졸업을 하고도 이 지역 내에서 갈 수 있는 괜찮은 직업들이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그간 지속하여왔던 국립대의 재정지원 축소와 등록금 규제 등은 그나마 어렵던 국립대학의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켰다. 지역의 거점 국립대학들의 교수 평균 대학원생 수 비율이 6명이라면 수도권 주요 사립대의 대학원생 수는 9명이다. 연구비의 비율도 국립대 전임교원이 수도권 사립대의 절반에 불과하다. 또한 국립대의 교원 확보율은 사립대학에 비해 7% 정도 부족한 상황이고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수도권 사립대학에 비해 30%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 없이는 국립대의 발전은 물론이고 지역의 발전도 요원하다.
국민이 지역의 거점 대학들에서 잘 교육받고 이후 그 지역의 좋은 직장에서 잘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다면 누가 구태여 서울의 명문대학에 가려고 발버둥칠 것이며 왜 서울로 몰려들어 서울의 집값을 올려놓겠는가? 이제 집권당의 대표가 국회에서 뜻깊은 정책을 발표하였으니 그 정책이 잘 실천되고 그로 인해 지역의 대학과 지역의 산업이 발전하기를 정화수라도 떠놓고 빌고 싶은 심정이다. 그것이 또한 과열된 대입경쟁과 수도권 부동산 가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인철

경북대 영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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