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호주필

지난 1977년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1998년 아시아로 번지면서 한국경제는 극심한 곤욕을 치렀다. 10년 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금융위기는 세계를 금융불안에 떨게 했다. 다행히 우리는 큰 화를 면했다. 그러나 2011~2012년 남유럽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소위 자본주의 위기론이다.
그런데 최근 두 번이나 당한 우리로서는 상당히 찜찜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에서 일어난 증시쇼크이다. 지금 미국경제는 실업률이 3%대로 떨어졌을 정도의 호황이다. 실업률 5%를 완전고용으로 평가할 정도의 나라에서 3%대라니 얼마나 좋은 경기인가. 오죽했으면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미국경제는 약간의 골디락스경제”라고 자화자찬했을까. 너무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가장 적절한 경제상태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미국의 증권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했으니 세계가 놀랄 수밖에. 그것도 미국경제를 이끌던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이 추락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연이틀 떨어져 불안을 이어갔고, 아시아증시는 다음날 다시 반등했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그 원인에 대해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이 미쳤다”며 금리를 인상한 연준에 그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의 금리 인상에다, 터키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의 금융불안이 이어지고, 또 주도주 역할을 하던 미국의 기술주에 대한 불안이 커진 것이어서 글로벌 증시는 내림세로 돌아설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또 국채 금리가 올라 3.5%에 접근한다면 미국증시의 돈은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 비관론의 등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도의 금융 불안은 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왜냐면 지난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때 양적 완화라는 이름으로 미국은 너무도 많은 달러를 뿌렸다. 다행히 그 효과를 봐 경제는 회복됐으므로 이제는 부작용 완화를 위해서도 거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세계의 금융부채는 61조 달러인데 이를 글로벌GDP에 대비하면 318%나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리를 올려 뿌려진 달러를 거둬들이는 긴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다.
세계경제 환경이 이렇게 되자 일부 논객들이 글로벌금융위기 10년째인 2018년을 맞아 슬며시 ‘한국 금융위기 10년 주기설’을 내민 것이다. 물론 불리해진 경제환경 외 확증은 없다. 그러나 위기는 고양이처럼 몰래 오는 법이다. 또 조심해서 나쁠 것도 없다.
설사 위기가 온다 해도 정부 대응에 따라 얼마든지 방어할 수도 있다. 가령 1997년 IMF위기 때는 정부 대응이 무능해서 직격탄을 맞았지만,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때는 적절한 대응으로 직격탄은 피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문제는 우리 경제의 현 상황이 극도로 나빠지고 있는 시점이라는 데 있다. 이는 한마디로 실질적 실업률(잠재적 구직자 등을 포함)이 11.4%라는 사실 하나로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11.4%는 이 조사가 시작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기 때문이다.
9월 현재의 취업자통계에서도 알 수 있다. 다행히 마이너스는 면하고 작년 동기 대비 4만5천 명이 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내용이 너무 나쁘다. ‘세금으로 간신히 피한 마이너스 고용’이라고 보도한 어느 신문은 복지사 등 공공부문서 16만 명이 늘어나서 면했다는 것이고, ‘추석 단기일자리 증가로 마이너스를 면했다’고 보도한 어느 신문은 산업 중추 역할을 해야 할 30~40대의 취업자는 1년 새 22만7천 명이 줄었다는 것.
이번 발표는 통계조작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인지 통계주도성장인지’ 모르겠다는 비아냥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경제의 건강 상태가 이처럼 좋지 않다면 설사 위기가 안 와도 경제계의 우려처럼 소위 ‘잃어버린 10년’으로 갈 수도 있고, 만약 위기가 온다면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처럼 좋은 말을 했다. “좋은 일자리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란 말이다. 당연히 정부는 이 말의 취지를 살려 규제개혁,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경제 살리기 같은 사회적 분위기 조성 등 후속 대책을 내놔야 위기가 와도 안심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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