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남촌마을

▲ 마을 안길의 나무로 만든 담장에 단풍이 들어가는 담쟁이가 작품처럼 얹혀 있다.
▲ 마을 안길의 나무로 만든 담장에 단풍이 들어가는 담쟁이가 작품처럼 얹혀 있다.

경주 남촌마을은 왠지 양지마을 만큼이나 따뜻할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경주보문관광단지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남쪽으로 빠지는 좁은 길을 따라 2㎞ 정도만 가면, 명활산 낮은 산기슭에 남촌마을이 있다. 산자락에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햇볕을 받으며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다.
남촌마을에는 탐방객들의 발걸음이 잦다. 진평왕릉, 신라말 대학자 설총의 무덤, 부부총, 보문사지에 묻힌 보물들 등의 역사문화 흔적을 더듬는 사람들이 계절과 관계없이 꾸준히 찾아들기 때문이다.
진평왕릉 주변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넓게 펼쳐진 평야가 이루는 전망 좋은 경치와 낭만을 풍기는 고분의 정취를 즐기기 좋게 산책로가 있고 벤치가 있다. 가끔 웨딩촬영을 하는 젊은이들의 풋풋한 장면도 만나게 된다.
마을 입구에는 도자기와 공예, 빵 만들기, 텃밭 등의 다양한 체험행사를 할 수 있는 남촌관광농원이 자리하고 있다. 또 퓨전음식, 새로운 공간개념으로 무장해 낭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신개념의 카페와 펜션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남촌마을은 힐링타운으로 변신하고 있다.

◆남촌마을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대나.’
남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콧노래로 흘러나오는 정겨운 노랫말이다. 남촌마을에 딱 맞는 노래다.
남촌마을은 경주시가지에서 보문관광단지로 올라가다가 명활산성 입구 500m 전방에서 남쪽으로 형성된 넓은 들을 앞에 둔 마을이다. 남촌이라 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고향을 떠올리며 아련한 그리움에 젖기 쉽다. 따뜻한 봄 소식이 먼저 도착하는 마을, 가슴속에 저마다 추억담 하나쯤 묻어두고 있을 듯한 고향 같은 포근한 마을이다.
‘보문’은 신라 때부터 조선 중기까지 습비촌(習比村)이라 불렀다. 약 260년 전 영양 남씨와 여강이씨가 처음 들어와 살면서 집성촌으로 형성됐다. 보문사 절의 이름을 따서, ‘보문으로 부르면 마을에 큰 선비가 난다’고 하여 보문으로 바꾸어 불렀다. 남촌은 순천부사를 지낸 우암 남구명의 후손 성균관 진사 남룡만이 이곳에 와서 마을을 이루어 대대로 살고 있어 남촌이라 하고, 이촌은 정헌공 이종상의 증조부 성균관 생원 이돈항이 조선 경종 때 이곳으로 와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므로 이씨촌이라 불렀다. 이씨촌과 남씨촌이 남촌마을로 불리고 있다.

◆남촌관광농원

▲ 마을 안쪽에 별장처럼 지어진 펜션.
▲ 마을 안쪽에 별장처럼 지어진 펜션.

남촌마을 입구로 들어서는 사거리 전봇대에 매달린 작은 간판들이 요란하다. 은하수펜션, 남촌도예펜션, 펜션셔블 등의 펜션과 소풍, 덕용암, 벨뷰카페, 앤의 정원 등 40여 개의 펜션과 카페, 민박과 같은 업종의 간판이다. 마을 바로 첫걸음에 나타나는 카페가 남촌관광농원이다.
남촌관광농원은 들어서면 우선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주차장 주변에는 잔디와 야생화들이 반기고, 공원처럼 꾸며진 정원에는 옛날식 우체통이 서 있다. 하트모양의 포토존 앞의 벤치는 연인과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위기를 풍긴다.
관광농원은 간단한 식사류와 입맛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음료를 준비하고 있다. 주문한 음식과 커피는 작은 연못을 보며 정원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서 풍경을 즐기며 먹을 수 있다. 데이트 코스, 바비큐까지 가능해 소규모 모임, 가족들의 사랑을 감싸 안게 하는 따뜻한 곳이다.
관광농원은 음식보다 체험형 장소로 더욱 인기다. 한복체험, 스쿠터와 자전거 대여, 민박체험도 가능하다. 특히 빵 만들기, 쿠키 만들기, 가죽과 펠트 및 비즈공예, 도자기 공예체험도 가능하다. 미니 동물농장도 볼 수 있고, 민속놀이가 가능한 농촌체험, 야생화 관람, 다육이 심기체험도 재미있다. 고구마 캐기, 토마토 따기, 메뚜기 등의 곤충채집, 물놀이와 물총놀이 등 계절 따라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남촌관광농원은 연인과 가족을 위한 휴식처이자 사계절 다양한 체험이 준비된 어린이 체험 쉼터로 문의하는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카페, 민박, 펜션의 천국

남촌마을은 이제 신라시대적 향수에 신개념 힐링을 더한 휴양마을로 발전하고 있다. 이씨촌과 남씨촌이었던 고풍스런 마을이 다양한 건축물들로 새롭게 단장하게 됐다. 초가집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기와를 얹은 순수 한옥도 다양한 별장형 건축물들로 탈바꿈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만 들어서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골목 입구에 빼곡하게 적힌 펜션, 민박, 카페 이름들은 집성촌이 가진 순수성을 압도한다.
마을 분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바뀌고 있다. 별장 같은 건물들이 기암괴석과 예술적 수형을 자랑하는 괴목 정원수, 계절별로 형형색색 단풍과 꽃으로 무장한 나무와 야생화로 동화속의 마을로 꾸미고 있다.
마을 앞으로 펼쳐진 넓은 들판은 눈을 시원하게 한다. 햇살이 겹겹이 쌓이는 양지마을이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진평왕릉과 같은 오래된 문화재에서 풍기는 푸근함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기 때문일 것도 같다.
봄 여름에는 푸르름이, 가을이면 바람에 일렁이는 벼들이 일제히 황색의 파도로 너울춤을 춘다. 들판을 지나 낮게 엎드린 낭산에는 사철 푸른 소나무들이 선덕여왕릉, 황복사지삼층석탑, 월명사, 최치원, 백결선생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서북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임금이 천년을 살았던 월성이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그 너머 형성된 도시의 문양도 따뜻하게 이웃으로 울을 치고 있다. 골목길과 연결된 대문을 나서면 마을이 바로 들길로 이어져 메뚜기도 보이고, 코스모스, 억새의 군무가 어깨춤으로 반긴다. 펜션과 주변건물들도 한결같이 친환경적으로 꾸며져 있다. 담장은 낮은 나무나 목책으로 꾸며져 있고, 담쟁이나 넝쿨장미, 모과, 석류 등의 나무들로 조경해 따뜻한 풍경을 선물한다. 누구나 한 두어 달 쯤 머물고 싶은 충동을 생기게 한다.

◆진평왕릉과 설총묘

▲ 남촌마을 가운데 있는 설총묘.
▲ 남촌마을 가운데 있는 설총묘.

남촌마을을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친근하게 다가오는 진평왕릉과 설총의 무덤, 보문사지 당간지주 등의 역사문화자원이 한 몫하는 듯하다.
남촌마을에는 국보 제90호 금귀걸이가 출토된 부부총과 사적지 진평왕릉과 보문사지, 보물 보문사지당간지주와 연화문당간지주, 석조, 경북도기념물 설총묘 등의 문화유적이 많다.
마을 바로 앞의 진평왕릉은 오래전부터 고목이 우거진 공원으로 마을주민들은 물론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왕릉 높은 봉분은 파르라니 깎은 스님의 머리처럼 잘 손질되어 있고, 주변은 계절별로 야생화, 들꽃들이 하얗게, 노랗게 또는 보라색으로 물들인다.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늘어진 버드나무, 소나무, 회화나무 등이 거목으로 자라 그늘을 드리우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벤치에 그림처럼 앉아 쉬는 이들의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가끔 풍경 좋다는 소문을 들은 사진작가들이 청춘남녀들을 동반해 웨딩 촬영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진평왕릉 입구에 마련된 주차장은 넉넉하게 마련돼 있지만, 방문객들의 차량으로 가득 차는 날은 잘 없다. 대부분 한적하게 하나 둘, 가끔은 학술단체 등이 몇몇 다녀갈 뿐이어서 조용하게 힐링하려는 이들의 코스로 제격이다. 마을 한가운데 작은 고분으로 고풍스런 상석과 안내간판이 있는 설총묘도 역사적 문화향기를 그윽하게 풍긴다.

◆보문사지와 연화문당간지주

▲ 보문사지 서남쪽에 한쪽 기둥이 부러진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다. 보물 제123호.
▲ 보문사지 서남쪽에 한쪽 기둥이 부러진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다. 보물 제123호.

남촌마을과 낭산 사이에 넓은 들판이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북천의 제방이 허술해 여름에는 범람하는 일이 잦았다는 기록이 있다. 가을철 저녁노을이 질 무렵이면, 낭산과 멀리 선도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이 보문들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마치 평화스런 들녘으로 밀레의 만종과 같은 풍경을 보는 것 같은 장관이다.
보문들 곳곳에 보물들이 숨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보문사’라는 글이 적힌 기와가 발굴되면서 보문사라는 절터로 확인된 곳이 마을 바로 앞에 있다. 보문사의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황룡사 찰주본기에 보문사 상좌승 은전이 도감전으로 871년 경문왕 때 대탑불사에 참석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신라시대 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당터에는 많은 기초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이하게 돌쩌귀가 음각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앞쪽에는 동서목탑터가 남아 있다.
또 보문사지 서남쪽 들판 가운데에 한쪽의 돌기둥이 부러진 당간지주 한 쌍이 우뚝 서 있다. 상중하 세 곳에 구멍을 뚫었는데, 한쪽에는 완전히 통과되게 구멍을 팠고, 한쪽 기둥에는 네모나게 막힌 구멍을 판 모습이 특이하다. 보물 제123호로 지정된 보문사지당간지주다.
보문사지 서북쪽 들판에는 또 아무런 장식이나 문양이 새겨져 있지 않은 소박하게 생긴 대형 석조가 있다. 보물 제64호로 지정된 보문사지 석조다. 석조에서 북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낮은 키의 특이한 문양이 새겨진 당간지주가 보인다. 가까이 가보면 당간지주 윗부분에 원형으로 연꽃무늬가 선명하게 양각되어 있다. 높이는 146㎝로 낮지만, 아랫부분이 상당히 묻힌 것으로 조사됐다. 당간지주에 연꽃무늬를 새긴 것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당간지주로는 가장 특수한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보물 제910호로 등록된 연화문당간지주로 학자들이 특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당간지주다.
남촌마을은 보물, 국보, 사적지, 기념물 등의 많은 역사문화유적을 가지고 있다. 또 뛰어난 자연풍경을 자랑하면서 현시대에 맞는 문화인프라들이 부쩍 늘어나 힐링의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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