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living.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던 주제가 하나 있다. 삶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마도 중학교 때였으리라.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수필이 이런 주제를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
필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살고 있었다. 가끔은 “왜 사세요?”란 질문, "Why do you live?"란 질문을 했고, 이런 질문을 던지는 나를 마치 돈키호테를 보는 듯한 주위의 시선을 느껴왔다.
지금은 답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설혹 그 질문에 오늘 확신을 갖고 답한다 할지라도, 10년 후에는 그 답이 틀렸다고 자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쉽지 않은 질문을 갖고 오늘도 살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삶은 그렇게 살아진다는 것이다. 삶은 하루하루, 매시간, 매분,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특정한 방향이나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목표의 존재 여부에 상관없이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이다. 내가 계획한 것을 달성하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하루도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자의 주위에는 목표와 계획 없이 사는 삶이 훨씬 자연스럽고 행복하게 보이는 이들이 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 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의 삶에서 행복을 찾곤 한다.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기에는 전제가 깔려 있다. 바로 내 가정의 안전과 행복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나의 부모님, 배우자, 아이가 안전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생활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런 전제들 때문에 무위자연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환경이 안전과 행복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다시 중학교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어떻게 해야 이런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내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사고는 끊이지 않고, 인도에는 이륜차들이 질주하고 있으며, 불법주차한 차들 사이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내가 먼저 가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치고, 내 통화가 중요하기에 버스에서 마음껏 이야기하고, 내가 먹은 음료수가 귀찮아 있던 자리에 그냥 놓고 간다.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대학입학을 위한 교육을 하고 있고, 대학생은 취업을 위한 준비를 하고, 직장인들은 노후 생활을 걱정하고 있다. 과연 내 가정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달리 이야기하면, 소중한 내 가족의 안전을 해치는 위험들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고, 내 가족의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이 상당하고, 나의 아이들은 자기 자신의 행복이 아닌 주위의 시선에 의하여 길러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구나. 내가 무위자연스럽게 살기 위해서는, 나의 편함을 양보하고, 상식에 맞게 주위를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구나. 거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고, 상식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말고, 남을 배려해야 하는 것이구나. 이렇게 사는 것이 결국 나와 내 가정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것이구나. 이런 생각들이 결론으로 다가온다.
이런 생각의 종점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내 탓이오’란 슬로건이 떠오른다.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가? 나는 상식을 지키고, 남을 배려하고 있는가? 나만의 편함을 위해 원칙을 지키지 않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건 아닌가? 아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바를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과연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상식에 맞는 배려를 하고 있는가? 오늘도 ‘내 탓이오’란 말을 상기하며, 자성하고 있다. Life is living을 위해.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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