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호주필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앞세운 하드외교는 언제나 성공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반드시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미국 매파인 네오콘의 이라크정책이 그러했다. 여기서 나온 반성이 오바마 대통령의 소위 스마트외교라는 것이다. 하드외교에다 문화나 가치 등을 중시하는 소프트외교를 엮은 것을 스마트파워외교로 이름 지었다. 스마트파워위원회라는 초당적 기구도 있다.
그러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스마트파워가 무엇인지 여전히 실체를 알 수 없다”고 비판했고,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부장관은 “군사력의 뒷받침 없는 외교는 허망하다”고 실제상황에서는 그 효과가 의심스럽다는 현실론을 부각시켰다.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레이건 대통령의 전략을 보자. 그는 1986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군비 축소를 위한 정상회담을 열었다. 여기서 그는 고르비가 “미국이 SDI 개발 계획을 실험실에서만 추진한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고 SDI를 강조하는 것을 보고 소련의 약점을 확인했다.
소련이 미국에서 추진 중인 소위 ‘별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SDI로 인해 여기에 대응하느라 경제적으로 무척 고전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레이건은 평화의 파괴자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군축을 거부한다. 그리고 SDI를 계속하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소련경제는 미국과의 군비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물론 여기에는 소련의 주력 수출품인 유가의 하락이라는 악재도 겹치고. 이렇게 하드파워로 ‘악의 제국’ 소련을 무너뜨린 것이다.
2013년 4월에 있었던 개성공단 철수사건을 해결한 것도 소프트가 아닌 하드외교였다. 북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핑계로 북한 측 근로자를 철수시켰다. 박근혜 대통령도 우리 측 근로자의 보호를 내세워 철수를 명령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야당과 여론주도층이라는 지식인들의 상당수는 북쪽도 잘못했지만 남쪽도 잘못했다는 양비론을 들이미는가 하면 당시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일촉즉발의 위기’로 규정하고 “북대화에 즉각 나서기를 당부한다”고 하며 대북특사 파견을 거듭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북한지향형인 일부 여론을 무시하고 ‘뿌린 자가 거둬라’는 원칙을 지키자 돈이 궁해진 북한은 참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대화를 제의했다. 그 결과 5개월 만에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경제력이 약한 쪽이 끝내 참지 못할 것이라는 정확한 예측을 한 것이다. 결국 경제력이라는 하드파워가 작용한 것이다.
만약 강한 쪽이 양보하는 것이 맞다는 주정주의(主情主義)에 따라 선의(善意)를 베풀었다면 이러한 올바른 타결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세계의 노력에서 중재자로 자처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종전선언을 하면 비핵화는 촉진된다’는 식의 제안을 했다. 미국은 비핵화 후 종전선언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도. 그 결과 블룸버그통신으로부터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뿐 아니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미국 WP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핵 신고와 검증요구는 뒤로 미루자”고 했다. 그 이유가 가관이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핵리스트 검증을 두고 결론 없는 논쟁이 많이 벌어졌고, 또 깨지기도 했다”며 “다른 접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한미 대북전문가들로부터 북한 주장과 똑같다는 맹비판을 받았다. 정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므로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는 말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 모두가 “우리가 잘하면 그들도 우리에게 잘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잘하면 핵도 포기하고”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류의 선의의 외교 중 하나이다. 선의의 외교가 얻은 게 무엇인가? 평화무드 외 비핵화 분야서 진전이 거의 없는 도로아미타불이 아닌가. 남북 군사합의로 우리 안보는 눈(정찰) 가리고 손(방어전력) 묶었다고 느끼는 국민이 많다.
문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힘을 통한 평화는 군의 사명이며 평화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강한 군대’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창군 70주년 기념식을 야간에 하는 등 군은 여전히 찬밥신세다. 왜일까.

서상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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