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 위독한 길을 따라 속수무책의 몸이여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 정든 병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어둑어둑 대책없습니다.

- 시집『혼자가는 먼 집』(문학과 지성사,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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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느끼는 정이란 마냥 어여쁘고 보기만 해도 좋은 고운 정이 있는가 하면, 귀찮고 마땅찮지만 허물없고 만만하여 물리치지 못하는 미운 정도 있습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주구장창 어화둥둥 고운 정으로만 언제까지나 지속되기란 어려운 법이지요. 그래서 미운 정까지 들어서야 제대로 정이 숙성되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버린 완숙의 경지에 도달하겠는데요. 단맛만 취하고 쓴맛은 서로 뱉어내는 사랑이란 자칫 그 관계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뿐 아니라 지속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것은 남녀 사이의 애정만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우정이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정든 사람들은 백번을 안녕하고 인사해봤자 돌아서면 또 보고프고 맘이 짠한 걸 어쩌란 말입니까. 대책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게지요.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도저히 안녕하지 못하는 너와 나의 마음과 같습니다. 생이란 그렇게 허무의 심연을 감추며 끌어안고 사는 것인가요. 세월이 흐르면서 들었던 정이 세월이 흐르면서 잊히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일까요 무리수일까요. 정이 들었다는 것은 서로에게 길들여짐일 텐데요. 그것은 곧 서로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뜻 아니겠는지요.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표정은 어떨까, 활짝 웃을까 찡그리고 있을까,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정이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를 걱정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아프지는 않을까, 혼자서 힘든 일로 끙끙대지는 않을까. 외로움이나 괴로움에 지치지는 않았을까.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깊은 정이 들었다는 것은 나보다 당신이 덜 아프고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기도 할 것입니다. 당신의 아픔이 나를 아프게 하고 당신의 슬픔이 나를 눈물짓게 하기에, 언제나 초조하고 긴장하게 됩니다. 일찍이 키에르케고르는 ‘사랑은 그리움, 영원한 초조’라고 말했지요. 그러므로 사랑으로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
일일이 말 못할 가슴앓이가 내 몸 안에서도 한 짐입니다. 하지만 속수무책의 버려진 몸이며 마음들이 아무리 즐비해도 그들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 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대책 없는 밤이 흐르고 내일이 오고 또 미래가 온다 해도 ‘정든 병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어둑어둑 대책 없습니다.’ 26년 동안 독일 생활을 해오면서도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특히 여성성 짙은 언어로 여성 독자들의 감수성을 심하게 건드렸던 허수경 시인이 지난주 독일에서 위암 투병 중에 별세했습니다.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의 구절들이 가슴에 저미어옵니다. “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에게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 창백한 빛을 머금고 저 별로 스러져간 그대 부디 잘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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