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집집마다 걸려 있는 오징어를 본 적이 있는지/ 오징어 배를 가르면/ 원산이나 청진의 아침햇살이/ 퍼들쩍거리며 튀어오르는 걸 본 적이 있는지/ 그 납작한 몸뚱이 속의/ 춤추는 동해를 떠올리거나/ 통통배 연기 자욱하던 갯배머리를 생각할 수 있는지/ 눈 내리는 함경도를 상상할 수 있는지/ (중략)/ 오징어 배를 가르는 사람들의 고향을 아는지/ 그 청호동이라는 떠도는 섬 깊이/ 수장당한 어부들을 보았거나/ 신포 과부들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지/ 누가 청호동에 와/ 새끼줄에 거꾸로 매달린 오징어를 보며/ 납작할 대로 납작해진 한반도를 상상한 적은 없는지/ 혹시 청호동을 아는지
-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창작과비평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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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다.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도 먹고 알이 통통 밴 도루묵찌개의 맛도 잊지 못한다. 몇 해 전 이 마을로 가기 위해 이용했던 ‘갯배’의 삯은 편도 200원이었다. 지금은 동명항과 청호동 사이에 다리가 생겨 차로 건널 수 있지만 이전에는 무동력선인 갯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속초 시내에서 청호동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청호동은 1ㆍ4후퇴 때 함경도에서 남쪽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허허 백사장이 실향민 마을로 형성된 곳이다. 통일이 되면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고향과 가장 가까운 이곳 속초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한 게 오늘날의 청호동 ‘아바이 마을’이다.
실향민 1세대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세상을 등지면서 2~3세대가 6천여 명 살고 있다. 실향민이란 고향을 떠난 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을 말한다. 피난 오면서 각지에 흩어져 있던 실향민들도 ‘속초에 가면 고향 사람들이 많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들은 짐을 풀고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돌아갈 고향이 있어서 더욱 악착같이 살아왔던 실향민의 고단하고 애잔한 삶의 사연이 청호동에 흐른다. 집집이 배를 갈라 널어놓은 오징어가 그들의 눈물보다 짭조름할까.
실향민 1세대들의 눈물이 말라가는 지금 ‘누가 청호동에 와 새끼줄에 거꾸로 매달린 오징어를 보며 납작할 대로 납작해진 한반도를 상상’할 수 있을까. 청호동은 이제 ‘은서네 마을’로 알려진 지 오래다. 18년 전 방영된 ‘가을동화’의 기억이 앞서기 때문이다. 통일이 되면 얼른 달려가기 위해 간이로 옹기종기 지었던 지붕 낮은 집들도 하나둘씩 새 건물로 바뀌고 있다. 함경도 고향마을의 이름을 상호로 붙인 ‘북청○○’이나 ‘신포○○’보다는 ‘은서네 슈퍼’가 훨씬 친숙해져 있다. ‘1박2일’에서 강호동 이승기가 다녀간 이후 수제 아바이순대는 사라지고 우후죽순 생겨난 식당들은 공장 순대 맛으로 통일되어 버렸다.
이제 청호동은 알아도 드라마와 연예인과 그들 배경만을 떠올릴 뿐. 그러나 ‘납작해진 한반도’가 가로 늦게 꿈틀대고 있다. 3차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 민간부문에서 협력할 일은 얼마든지 있음을 확인했다. 역시 가장 기대가 큰 분야가 다양한 방식의 이산가족 상봉이다. 실향민 1세대들이 다 눈을 감기 전에 고향 길을 한번 터줄 수는 없을까. 청호동 아바이 마을 사람들을 함경도로, 그리고 평안도와 황해도로 권역별 고향방문단 관광버스 몇 대 대절하는 타협이 마음만 먹으면 그리 힘든 일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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