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나갔다. 매년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두가 있다. 여성들의 명절 증후군이다. 나는 남자들이 명절 준비를 여성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한다. 올해 추석을 맞아 언론에 재미있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추석 전날 TV를 보았다. 토론 주제가 ‘추석 명절에 여행을 가느냐, 안 가느냐’다. 토론 과정에 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조상 귀신이 자손들이 해외에 가면 찾아올 수 있느니 없느니, 차례를 지내는 것이 옳으니 안 옳으니…. 조상이 듣는다면 성질이 나서도 차례 상에 오시지 않을 일이다. 결과는 ‘여행을 가자는 의견과 차례가 우선’이라는 의견이 반반이다. 놀라운 것은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삼십 대도 아니고 육칠십 대란 것이다.
추석 연휴 첫날 퇴계 가문의 17대 종손이 서울의 한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우리 집은 추석 차례를 안 지낸다. 평소 기제사는 간소하게 지낸다. 차례는 음력 10월 성묘 때 지낸다.’ 종손의 개인 의견인지 아니면 가문에서 검증받은 의견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사적으로 알아보니 퇴계 가문 전체의 의견이 아니고 종손 개인의 의견인 것 같다.
다른 차례 관련 보도도 있었다. ‘본래 유교에서는 기제사만 지내지 명절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차례 문화는 명절날 자손들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죄송해서 조상께 음식을 올리면서 생겼다. 차례상은 홍동백서니 좌포우혜니 정형화된 것이 없다. 차례를 지낼 때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정성껏 간소하게 지내라.’ 검증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다. 또 이런 내용도 있었다. ‘집안 전통상 차례 지내기가 관례라면, 제수는 과일과 송편으로 충분하다.’ 차례 지내기가 집안 관례가 아니라면 차례는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할 사안이다.
추석은 중추절ㆍ한가위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시대 때부터 추석 명절을 쇠었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서 조상 산소를 돌보고 벌초를 했다. 차례상에 올리는 제물은 햇곡으로 준비했다. 햅쌀로 밥을 짓고, 햅쌀로 술을 빚고,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는 것이 상례였다. 곡식이 잘 여물게 해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해에 나온 햇곡식을 조상님에게 대접한 것이다. 추석은 조상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 중국과 일본에도 있다. 추석 명절에 차례와 성묘를 안 하는 것을 자손 된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다. 이렇게 역사와 전통을 가진 추석 명절이, 해외여행을 하는 날로 치부되니 가슴이 멍하다.
차례를 지냄으로 몇 가지 문제점은 있다. 우선 주부들의 육체적 부담 문제이다. 떡을 만들고, 전을 부치고, 어물을 다듬자니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쑤신다. 제수도 그렇다. 주부들이 온종일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음식이 냉장고에 가득하게 남는다. 예전처럼 이웃에 음복하려 해도 반기지 않는다. 자식들이 가고 난 뒤, 늙은 부모들이 소비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결국은 며칠 후 슬며시 음식 쓰레기가 되고 만다. 제수 진열하는 방법도 까다롭고, 또 경제적으로도 제법 지출이 된다.
그러나 추석 명절은 몇 천 년의 가난과 빈곤 속에서도 유지 발전시켜왔다. 이제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강한 시점에서 심신이 고달프다는 이유로 미풍을 소멸시킨다는 것은 조상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큰 죄를 짓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우리 추석과 비슷한 추수감사절을 성대하게 기념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까닭이 없다. 또 현대는 핵가족으로 친척 간에 소통할 기회가 없다. 추석명절 날 같은 할아버지의 자손들이 한데 모여 할아버지를 회고하고 친척 간에 친목을 도모하는 기회를 얻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1인 가구가 늘어나 ‘혼족’들이 증가하는 작금에, 친척간 소통의 기회를 가져, 가족 제도와 혈연, 그리고 함께 살아감에 대한 당위성을 음미해보는 것은 어쩌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명절의 차례 지내기와 평소 기제사 모시기가 힘들다면 개선 보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에 대해 유학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제사를 모실 때, 전은 유교에서 나온 음식이 아니다. 그러니 없애도 된다. 퇴계 선생은 음식 종류와 양의 간소화를 강조하셨다. 제사를 모시는 방법도 정형화된 것이 없다. 실제로 유교 명문가에서는 전을 올리지 않고, 음식을 간소화하고. 제사 모시는 방법을 가가 예문으로 행하고 있다. 제수도 남녀가 함께 준비하고 있다.

신동환

객원논설위원

전 경산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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