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놀이를 한다/ 장난감 비행기 전차 항공모함/ (중략)/ 무서운 줄 모르고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 (중략)/ 아이들 전쟁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총에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했듯이/ 아버지의 슬픔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총에 있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중략)/ 아름답고 힘있는 것은 총이 아니란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별과 나무와 바람과 새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늘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은 것이란다/ 아파트 화단에 피어난 과꽃 한 송이를 꺾어들며 나는 조용히 얘기했다/ 그리고는 그 꽃을 향하여 낮고 튼튼한 목소리로/ 받들어 꽃 하고 경례를 했다/ 받들어 꽃 받들어 꽃 받들어 꽃/ 시키지도 않은 아이들의 경례소리가/ 과꽃이 지는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흔들었다.

- 시집『받들어 꽃』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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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서부터 아이까지 전 국민의 전투태세가 지극히 당연시되던 노태우 군사정부 시절에 발표된 시다. 이 시는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더욱 현실적으로 설득력 있게 와 닿는다. ‘총’ 대신 ‘꽃’을 받들고 종전선언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완전하고 영구적인 평화의 첫걸음을 내디딜 때가 아닌가. 정전이라는 위태로운 쉼표에서 마침표를 찍는 종전선언은 그 자체로 ‘한반도 평화 시대의 선포’이다. 8천만 겨레가 염원하는 ‘받들어 꽃’을 마다할 자 누가 있겠는가. 전쟁보다는 평화를, 미움보다는 사랑을 거부할 자가 누구란 말인가.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우리 아이들을 평화주의 정신으로 교육하는 것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우리 아이들에게 군국주의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예방접종과 같다. 나는 전쟁보다는 평화를 가르치고, 증오보다는 사랑을 가르칠 것이다.” 국군의 위용을 과시하고 장병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정한 ‘국군의 날’ 행사도 형식과 내용에서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런데 하나 유감인 것은 ‘10월 1일’이 국군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표현하는 날로 타당하냐는 것이다.
딱 부러지게 이 날짜로 정한 배경이 없는 가운데 한국전쟁 당시 육군이 38선 돌파를 기념한 날이란 설도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멸공’의 의미가 깃들어 있어 오늘날의 시대정신과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지난해부터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기념일인 9월 17일로 옮기는 것이 정통성 측면에서 적합하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야당은 그 변경 시도가 독립 세력과 건국 세력의 편가름 행위라며 반대하고 있다. ‘국군의 생일’은 국가의 정체성과 국군의 정통성, 역사관 등이 총체적으로 걸쳐 있는 문제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9월 17일이 더 타당성은 있어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일제의 대한제국군 해산일을 국군의 날로 정하자는 의견도 있다. ‘한국군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보고’는 “광복군은 일찍이 1907년 8월 1일 군대 해산에 곧이어 성립한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광복군 창군의 역사적 전통을 구한국군 해산과 그 의병에 연결시킨 이치에 닿는 해석이다. 나는 여기에 한 표다.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정미의병, 그들이 우리 국군의 1세대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들을 향해 쩌렁쩌렁 울리도록 ‘받들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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