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신피부비뇨기과 신현철 원장

▲ 1985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간호사 등 직원들과 함께 한 신현철 원장(가운데 양복 입은 남자), 바로 옆에 가운 입은 의사는 맏사위 최경진 원장.
▲ 1985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간호사 등 직원들과 함께 한 신현철 원장(가운데 양복 입은 남자), 바로 옆에 가운 입은 의사는 맏사위 최경진 원장.

그는 평생 죽음의 신과 싸웠다. 그는 숱한 생명들을 죽음에서 구해냈다. 그는 항상 성실했고 냉철했다.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는 의사로서 불편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최상의 의술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했다. 병원에서 친절이나 실내장식 등 외형적인 면에 치우는 것을 불편해 했다.
그가 대구에서 개원한 1960년대 초 의료장비는 값비싼 미국산을 갖췄지만 집안은 가난했다. 고생만 한 아내까지 환자들의 빨래와 간호로 도와야 했다. 환자들이 수술 후 병원비를 내지 않고 달아나거나 상이군인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려도 불편하게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몰래 도와주려 했다.
그는 가난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았다. 그는 병원에서 서양식 댄스파티를 열기도 했고, 어렸을 때 배운 솜씨로 피아노를 치기도 했다.

◆은퇴와 별세

그는 1999년 75세 때 아들 신기식 원장(피부과)과 사위 최경진 원장(비뇨기과), 딸 신혜원 원장(피부미용ㆍ질환) 등에게 병원을 인계했다.
이후에도 명예원장으로 2008년까지 병원에 출근하며 옛 환자들을 돌봤다. 그는 건강유지를 위해 바둑이나 피아노연주를 즐겼으며 전화영어로 영어공부를 계속했다.
그는 2016년 3월11일 대구서부노인전문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만 92세였다. 장지는 대전 현충원에 마련됐다.
이송하 전 연합뉴스 기자
연보
1923년 3월12일 출생
1936년 3월 영주보통학교 졸업
1943년 9월 대입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 이수
1944년 징병 추정
1946년 4월 경성대학 의학부 입학
1950년 6월 육군 9사단 통역장교로 참전
1950년 10월 부산 제3 육군병원 복무
1952년 10월 백마고지 전투 참전
1952년 11월 권남영과 결혼
1952년 12월 충무무공훈장 받음
1954년 12월 미국 LA 시립병원 인턴과정 시작
1958년 11월 미국 매사추세츠 메모리얼 병원 비뇨기과 전문의 과정 수료
1962년 4월 대구 중구 남일동 피부비뇨기과 의원 개원
1966년 9월 경북대 의대 박사학위 취득
1973년 9월 대구 중구 공평동 현 자리로 신축 이전
2008년 명예원장 은퇴
2016년 3월11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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