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날갯짓 하려는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 옛날 아버지가 텁텁한 냄새의 입김으로/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똑같은 방법/ 아버지와 달리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한다// 구부려 올려다보는 아들의 어깨너머/ 그가 겪어나갈 신산(辛酸)의 세월이 겹겹이 둘러섰다//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 훨씬 더/ 세상은 차갑고 무섭단다// 내 힘 한 점 소용없을 때까지/ 네 기력을 돋울 군불이 되고 싶건만// 이미 달빛이 된 아버지/ 나도 곧 달빛으로 오른다/ 아들은 그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 법 가르치며/ 그 옛날 자신의 숨결과 닿았던 내 숨결을 기억하리// 생의 반복은/ 엄숙하고 슬픈 되새김이다

- 시집 『산방에서』 (책만드는집,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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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모방과 동경, 동시에 질투와 경외의 대상’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통해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 규범과 이성적 사고를 배운다. 아버지의 꾸짖음을 통해 제멋대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닫는다. 청소년기까지 끊임없이 아버지에 반항하며 그 반항을 다스리는 아버지의 권위를 통해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습득한다. 따라서 아버지는 한 사람의 성격 전반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학습장이다. 아버지는 ‘그 옛날 아버지가 텁텁한 냄새의 입김으로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똑같은 방법’으로 아들에게 가르치고 그 학습은 ‘엄숙하고 슬픈 되새김’으로 체득되고 ‘반복’할 것이다.
오늘날 가정의 많은 문제와 나아가 ‘세대 갈등’은 바로 아버지와 자식이 지나치게 만만한 친구 사이가 되어버린 데서 생겨났다고들 말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절대 친구 관계가 아니다. 17세기 사상가 존 로크도 ‘부모는 자식에 대해 절대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응석을 받아주고 꾸짖지도 않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버지를 어려워할 리가 없다. 아이들은 권위가 없는 사람의 말은 제대로 듣지 않고 믿지도 않는다. 서울 법대를 나온 전직 법관이고 변호사를 하다가 경북대 로스쿨 교수를 지낸 법학자인 만큼 시인보다는 교수란 호칭이 더 자연스럽겠다. 신 교수는 10남매 중 막내로 대구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꾸준히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었고 지난 개각 때는 박범계 의원과 함께 법무장관 하마평에 오를 정도로 다채로운 경력과 실력을 갖춘 분이다. 그만한 능력과 권위를 갖추었기에 아들에게 신뢰와 애정 어린 숨결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사랑하기만 할 뿐 가르치지 않는 아버지가 많은 요즘 현실에서, 이처럼 ‘엄숙하고 슬픈 되새김’의 틀을 반복 유전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재벌 3세 갑질 사건에서도 느꼈듯이, 모든 사회 구성원의 인성 교육은 자식의 귓불에 닿는 아버지의 숨결에서부터 비롯됨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겸손과 배려를 잊지 말라고 귀띔해줘야 한다.
기본을 지키고 바른길을 가라며 넥타이 매듭을 마무리했으리라. 법관 재직 시 사법부를 비판했다가 재임용 탈락하였으며, 로스쿨 재직 중에도 로스쿨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신 교수는 늘 원칙과 정의를 앞세웠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는 소신은 처음 넥타이를 맬 때의 초심 그대로다. 우리 자식들에게 가르치고 물려줘야 할 세상도 바로 그 정의로운 세상이다. 귓불에 스쳤던 아버지의 말씀은 넥타이를 매주던 그 손길의 온기와 함께 오래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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