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호주필

전체 취업자에 대한 비중이 무려 21.3%나 되는 자영업자들. 그들의 숫자는 자그마치 560만 명이나 된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다. 그것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권이라고 자부하는 정부에 의해 당한 고통이다.
이를 증명하는 증거는 많다. 우선 지난해 음식, 숙박 등 4대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88.1%나 된다는 사실이 그 중 하나다. 가게 10곳이 문 열면 다른 9곳이 문 닫는다는 이야기다. 또 금융기관으로부터 돈 빌리기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도 그렇다. 2013년 15개 은행이 마련해 놓은 ‘개인사업자 대출 119’를 보면, 작년 동기 대비 이용 건수로는 40%, 금액으로는 44%나 늘었다. 대부분 적자 운영하고 있다는 아우성이 빈말이 아니라는 증거다.
어느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노래방 주인의 한마디가 이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아무도 노래 부를 기분이 아니다”는 그 말이다. 그래서 노래방에도 손님이 없다는 주장이다.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보다 부를 기분이 안 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인 것 같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다. 대통령지지율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자영업자가 59%로 가장 높고 그다음이 무직과 은퇴자였다. 동시에 지지율이 가장 낮은 소득계층도 최하층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는데 사회적 약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경제는 묘하다. 왜냐하면 역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진보나 좌파 정권은 모두 고용보호 정책을 취한다. 그러나 이 정부하에서는 대체로 실업률이 높다. 반대로 보수나 우파 정권에서는 고용창조 정책을 취한다. 말이 ‘창조’이지 구조조정이 자유롭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정부하에서는 실업률이 낮다. (미셸 알베르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또 같은 최저임금제를 시행해도 독일이나 일본 등은 부작용이 거의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럴까? 너무 급격히 올랐기 때문이다. ‘2년 동안 30%’라는 것은 자영업자들의 주장대로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정착에 성공한 나라에서는 모두 시기별, 업종별, 지역별 고려도 하고 또 탄력근로제 등을 실시하여 완충작용도 두고 있다.
경제이론상 생산성은 올라가지 않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최저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단축해 봐야 경제가 나아지지 않는다. 영세 자영업자만 죽게 되고 결과적으로 고용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최저임금의 긍정 효과가 90%라고 우기는 것은 뜻만 좋으면 결과는 나빠도 된다는 독선적 생각의 반증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며칠 전 8월 중 취업자 증가 3천명뿐이라는 고용 참사를 경험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를 계기로 지금 우리가, 까닥 잘못하면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하는 우려가 전문가 사이에서 거론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수출전선에서 반도체 외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것이 현실이다.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중국의 추격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소득주도성장이니 공정경제니 하는 경제정의에 매달려 있어야 하나 하는 반성의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새로운 세상 즉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중이 아닌가. 미래에 대한 설계는 물론 토론도 없다. 이렇게 희망을 만들지 않는 이 정권의 태업에 어느 친여 학자는 대통령의 하야까지 주장하며 분노를 표시했다.
한국경제는 지금 고령화나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환경 등 여러 여건상 “지금 한국의 경제생태계는 ‘잃어버린 20년’ 초기인 1990년대 일본과 닮았다”고 진단하는 국내외 학자들이 꽤 있다.
이에 대한 정권의 처방도 닮았다는 주장이다. 즉 일본은 레이거노믹스를 흉내 낸다며 SOC(사회간접자본)에 막대한 돈을 퍼부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국은 복지에 엄청난 투입을 하고 있다. 그러나 2년 동안 54조 원을 쓴 고용정책에서 보듯 그 효과는 별로다. 정말 국민이 모두 노래 부르고 싶을 분위기를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서상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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