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빨랫감을 가득 담은 큰 대야를 이고서 뒷골 도랑으로 가시곤 하였다. 도랑가에 있는 빨래터에는 큼직한 돌덩어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져 있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어머니는 빨랫방망이로 두들겨가며 빨래를 하셨다. 볕이 좋은 날은 먼저 한 빨래를 너럭바위에 널어 말리기도 하였다. 빨래터에 앉아 있는 이런 아주머니들의 모습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줄어들기 시작한 빨래터 나들이는 세탁기의 보급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가전제품의 보급이 가사노동을 줄였지만, 그로 인해 이웃과 이야기하는 담소의 공간도 사라져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빨랫방망이를 두들기며 듬성듬성 정담을 나누는 장면은 이제 옛 풍속화가 되어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지난 일요일 아침, 나는 아내를 따라 ‘빨래터’에 갔다. 이불 보따리와 한 바구니의 빨랫감을 들고서. 그 옛날 어머니를 따라나서던 그때의 도랑가 빨래터가 아닌 동네 상가 한복판에 있는 빨래방이었다. 가게 안에는 여러 대의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가 놓여 있었다. 한쪽 귀퉁이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고, 또 다른 벽에는 자동세제판매기와 동전교환기가 나란히 붙어 있다. 맞은편 벽에는 큰 텔레비전이 걸려 있다. 무인가게로 운영되는 만큼 여기저기에는 세탁기와 건조기 그리고 운동화 세탁기의 작동 요령을 적어 둔 배너가 서 있다. 에어컨도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30분간 작동되도록 세팅되어 있다. 가운데는 큰 테이블과 의자가 여럿 놓여 있다. 말린 빨래를 개거나 정리하기 편하도록 말이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서 공간 활용방법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가정마다 세탁기가 있지만 이불 등 대형 빨랫감은 집에 있는 소형 기계로 하기에는 버겁다. 더구나 직접 볕을 쬘 수 없는 아파트에서는 빨래 말리기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매번 세탁소에 맡길 수도 없다. 이런 틈새를 노린 것이 무인 빨래터인데, 그 옛날 많은 빨래를 집에서 하기 힘들어 도랑가 빨래터를 찾는 것과 흡사하다. 빨래터에 주인이 보이지 않는 것도 얼핏 닮았다. 무인 빨래터의 세탁기와 건조기는 도랑가에 있던 빨랫돌이나 너럭바위를 대신한다. 눈에 비치는 풍경은 옛날 도랑가 빨래터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사람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차이였다. 세탁기와 건조기 돌아가는 기계 소리만 요란할 뿐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서로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다. 빨래터라는 공간이 주는 외형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달랐다. 하나같이 말린 북어 입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다.
너무 조용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던 책이라도 하나 들고 나올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밥 족과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는 대학생들에 이어 이제 빨래방 아줌마들까지 나홀로 족이 되었다. 필요 없이 다른 사람과 말을 섞지 않는 것,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풍경이다. 좋게 바라보면, 이것은 디지털 시대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개인적인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인정이 메말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정을 따질 겨를도 없도록 바쁘게 돌아가는 디지털문명에 스스로 제동을 걸어볼 필요가 있다. 옆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이 한 개인의 인간성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모여 사는 인간으로서 재미가 덜한 것은 분명하다.
약 1시간 정도 지나자 빨래를 끝낸 기계가 삑삑 소리를 낸다. 세탁에서 건조까지 마친 빨래가 뽀송뽀송하다. 아직 건조기의 열기가 남아 있어서 따뜻하다. 지저분한 빨랫감이 통 속을 몇 바퀴 돌아 나오면서 깨끗하고 따뜻해졌다. 다만 그것이 인간의 온기가 아니라 기계의 온기라는 것이 씁쓸하다.
도랑가 빨래터의 주인인 자연은 인간에게 공간을 빌려주고 정을 낳았다. 그런데 무인 빨래터의 보이지 않는 주인인 사업가는 자본에게 공간을 빌려 주고 이익만 창출했다. 정보와 자본으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기계를 설치한 사업주나 빨랫감을 들고 오는 소비자나 모두 효율적이다. 문제는 없다. 그러나 기계에 빼앗긴 자연을 되찾아야 인간의 온기도 따뜻하게 퍼질 것이다. 볕이 아무리 좋아도 빨래 한 장 널어 말릴 수 없어서 건조기를 들여놓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우리는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기계를 없앨 수도 없다. 그럴수록 우리는 기계가 아닌 인간에게 자기 속내를 먼저 열어 보여야 한다. 웅웅웅 돌아가는 세탁기와 건조기 소리가 요란한 빨래방을 나오면서 촬촬촬 도랑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다.

김종헌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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