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 영화 ‘미망인’의 한 장면
▲ 영화 ‘미망인’의 한 장면

영화 ‘미망인’은 박남옥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딸을 낳고 15일 만에 촬영을 시작, 산후 조리조차 제대로 못한 채 제작한 영화다. 그녀가 곧 영화사였을 만큼 혼자 모든 작업을 해냈다. 스스로 영화 제작자이며 감독이었고 때로는 밥차 아줌마였으며 때로는 조명기사이자 영화 배급자이기도 했다.
이 영화의 원제는 ‘과부의 눈물’. 이민자, 이택균, 나애심, 최남현 등 당대의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했다. 전쟁 중 남편을 잃고 어린 딸과 살아가는 주인공 이신자가 젊은 청년과 사랑에 빠지면서 겪는 갈등을 그린영화로 당시 전쟁미망인 문제를 여성의 시각으로 다루었다. 전쟁으로 아내와 어머니라는 위치마저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느냐에 이 영화의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우연이 거듭되는 플롯과 자극적인 치정관계, 과장된 연기들은 다소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1950년대 한국영화에서 여성의 욕망이 이토록 솔직하게 다루어진 작품은 드물다는 것이 평단의 시각이다.
박남옥에게 영화 미망인은 여성이라는 현실적 한계와 함께 많은 고통을 주었다. 남자 감독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힘든 일을 겪었고 평단의 인정은 받았지만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영화는 그녀에게 현실의 냉혹함을 알려주었고 다시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처가 되었다.
딸 이경주(미국 거주)는 영화판을 떠난 엄마를 이렇게 묘사했다. ‘투포환 선수였던 엄마는 영화 ‘미망인’이라는 포환을 던진 후, 그걸 주우러 가지 않았다. 그것이 어디쯤 떨어져있는지도 몰랐다. 좌절과 상처를 안겨준 그 포환을 던진 후, 새 포환을 던지지 못하고 엄마는 투포환장을 영영 떠났다’ 고 했다.
이 영화는 원본이 유실된 채 복원된 터라 마지막 5분은 아예 훼손되어 주인공이 어떠한 길을 선택했는지 정확한 결말을 알 수 없다. 더구나 종료시간 10여분을 남겨둔 지점에서는 사운드 마저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미망인’은 무척이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한국영화의 자산으로 여겨진다.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토대로 1950년대를 살아가던 여성들의 모습과 당시 사회상이 반영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또 너무 일찍 영화판에 뛰어든 여성 영화감독의 지난한 힘겨움과 눈물겨운 고집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순재 언론인

연보

1923년 경북 하양 출생
1930년 대구 동인동으로 이사
1936년 경북여학교 입학
1943년 이화여전 가정과 입학
1943년 조선영화 건설본부 산하

광희동촬영소에서 일함
1946년 영화 ‘자유만세’ 후반작업 도움
1953년 극작가 이보라와 결혼
1955년 영화 ‘미망인’ 개봉
1957년 동아출판사 출근
1959년 영화잡지 ‘시네마 팬’ 출간
1960년 동경아시아영화제 참석
1980년 미국으로 이민
1997년 제 1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미망인’ 상영
2001년 임순례, 박남옥을 기리는 다큐멘터리 제작
2008년 박남옥 영화상 제정
2017년 4월 미국에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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