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람의 손이 꼭 필요한 곳

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



몇 주 전부터 우리 가족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주차 전쟁이 일어났다. 아파트가 오래되면서 지하 2층까지 있던 주차장의 바닥과 벽의 페인트가 벗겨져서 보기에 흉해지고 안전에 문제가 생겨, 결국 주차장 전체를 도색하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 기간 주차를 할 수 없게 되어 차들이 모두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사전에 혼잡할 것을 예상하고 네 군데 주차장을 하나씩 차례대로 도색할 계획을 하고 스케줄을 잡았다 한다. 그러나 수많은 차량이 지상으로 올라오게 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차가 없던 통로에까지 주차한 자동차로 메워지면서 때아닌 주차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차를 세울 수 없는 위치에까지 무질서하게 주차가 되면서 주차 시비가 붙는 등 아수라장이 될 지경이었다. 더 이상 불편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던지, 아파트 경비실에서 수고를 해 주기로 했다. 주요 장소에서 밤늦게까지 자리를 잡고 대기하면서 주차하는 입주민들에게 적당한 주차 위치를 안내해주고 주차를 통제해 주었다.

경비원들이 서로 무전기를 가지고 통화하면서, 각자 비어 있는 주차 장소를 교환하면서 입주민들이 주차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자 며칠 전의 무질서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조금 바쁘고 복잡하기는 하지만, 다시 예전처럼 주차할 수 있게 됐다.

평소에는 경비실이나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를 위해 수고하던 이들이었다. 단순히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이렇게 도움을 주는 것을 보고 새삼 이들이 우리 아파트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는다.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다. 새로운 시장과 패러다임이 펼쳐지면서 이전까지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많은 변화 속에서 가장 크고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계층이 바로 경비원, 운전기사, 택배기사, 서비스업의 아르바이트업무직 등으로, 단순한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들이다. 이들 직업은 자동화의 물결 속에서 서서히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과정에 있음이 틀림없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의 무인경비시스템, 자동운전 혹은 무인운전 자동차, 그리고 무인점포 등 이제 무인으로 시작되는 업종을 보는 일이 신기한 일이 아니고 다반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직업군들이 하는 일이 단순히 무인으로 대체될 수 있는 업무뿐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면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이나 여러 가지 자동화로 사람 수를 줄이고 단순화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 지점에서는 무인 혹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할 경우, 바로 ‘여유와 융통성’이 발휘되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사람의 역할일 것이다. 아파트의 주차 관리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주차 공간을 찾아내서 주민들이 주차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사람이 융통성을 발휘해 주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마트에서 계산대를 무인으로 운영하다가 시스템의 오류로 도난방지 경고음이 울리면서 고객이 절도범으로 몰린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만약 계산원이 있어서 융통성을 발휘해 주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무인시스템이나 자동화가 더 보편화하더라도 사람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지점에서는 사람의 손길이 더욱더 필요해진다. 역설적으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적 교감, 여유와 융통성,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더욱더 필요해지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이나 자동화가 인간의 업무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다. 단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도와주는 보조일 뿐이다. 자동화나 인공지능 같은 시스템이 발달할수록 사람 사이의 교감이 더욱더 소중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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