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호주필

진보정권인 참여정부 초기 여권 인사들은 솔직한 면이 있었다. 세미나 후 비공식모임 등에서 ‘정치는 언론이 잘한다고 하면 잘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를 펼치면서 은근히 협조를 요구하곤 했다. 그러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인으로서는 듣기가 거북했었다.
하긴 선전선동에 유능한 진보정권은 처음부터 그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는 언론을 통한 국민에 대한 설득 과정’이라고 솔직한 고백을 했다. 그 외도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정치인이 잘못해도 언론이 짜고 잘했다고 하면 잘한 것이 된다’고 했다. 물론 발언 배경은 김대중과는 거꾸로다. 당시 언론들이 자기를 때리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이 정권을 잡았을 경우를 가정해 보면 당선 후 진보정치인들이 고백했듯이 조작보도에 대한 유혹이 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저항의 모습이 엉뚱하게도 운동권 출신 통계청장의 교체에서 나타났다. 현 정권에 불리한 가계소득동향조사 결과 발표 때문에 바뀌었다는 중론이다. 바뀐 황수경 전 청장은 이임사를 읽는 내내 울면서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안 되게 심혈을 기울였다”는 그의 말이 국민의 뇌리에 신선하게 박혔다. 진정한 운동권다운 순수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긴 정치 선진국인 미국정치서도 통계는 왈가왈부의 대상인 모양이다. 몇 년 전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의장이 미국민주주의 초기에 있었던 두 여성을 극찬했다. 한 사람은 통계청장이었고, 또 한 사람은 노동위원회위원장이었다. 통계청장은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았고, 노동위원장은 이 통계를 굳게 믿고 이를 실천한 것이 공이라는 것이다.
옐런은 이를 통해 ‘정부통계는 정확해야 하며, 정치적 영향이나 편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보았고 또 ‘믿을 수 있는 정부통계는 민주주의의 보호벽’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어디나 통계의 조작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모양이다.
통계는 이현령비현령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대법학과 교수로 진보집권 플랜의 저자였던 조국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진보의 집권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겠다며 여기저기로 강연을 많이 다녔다. 그의 강연 중 통계의 오류가 드러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펜엔마이크의 보도도 그 중 하나다.
당시 유행했던 이슈가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사회’였었다. 이에 꼭 맞는 자료가 국세청으로부터 나왔다. 즉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동안 상위 20%의 소득은 55%나 늘어난 반면 하위 20%의 소득은 35%나 줄었다는 것.
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발표 원고에는 ‘하위 20%’를 ‘하위 80%’라고 표현함으로써 마치 국민의 80%가 소득이 준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하위 20%라고 해도 해석을 액면대로 단순하게 하면 안 된다는 국세청의 해명자료도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하위 20%의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전후 카드 사용이 급격히 늘면서 소득원이 노출되어 종전까지 세금을 내지 않았던 사람들도 대거 세금을 내게 되었다. 따라서 1999년도 하위 20%에 속했던 사람들은 바로 위의 등급인 2분위 등으로 올라갔고, 그 밑에 있던 사람들이 올라왔으니 당연히 소득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
또 하나 여론조사 통계에서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율도 그렇다. 한국갤럽은 지난 7월부터 11%라고 하고 있고 리얼미터는 20%라고 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나타난 국민의 선택은 자유한국당이 27.8%이고 정의당은 9%였었다.
7월은 한 달 이상의 시간격차로 인해 인심이 바뀔 수도 있고 안 바뀌었다 할 수도 있다. 조사기관의 해명대로 여론조사 기법에 따른 오차인가? 아니면 인위적 조작인가? 아니면 여론조사 통계의 한계인가?
민주주의는 국민의 심판을 받는 제도이다. 그런 민주주의에서 통계가 틀린다는 것은 바로 국민의 선택을 혼란시키는 일이다.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다.

서상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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