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항대구기상지청장

뉴스나 라디오, 신문 지면을 통해 매일 국민에게 전달되는 일기예보는 그 분량이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일기예보가 전달되기까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의 기상조건을 분석하여 앞으로의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미래의 일을 최소한의 오차로 미리 알아내는 것인 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손꼽히는 것은, 날씨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보여주듯, 기상현상처럼 복잡한 시스템은 아주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게다가 날씨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컴퓨터의 발명과 수치예보 이론의 발전에 힘입어 더욱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일기예보가 가능해졌다.
수치예보는 하늘, 땅, 바다, 그리고 우주에서 관측된 기상요소(기온, 바람, 습도 등)의 시간변화를 나타내는 물리방정식을 컴퓨터에 입력해 미래의 대기상태를 예상하는 방법이다. 즉, 현재의 날씨 정보에서 미래의 날씨 정보를 계산해 내는 예보라 할 수 있다. 수치예보는 수치모델에 의해 계산된 결과가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의 날씨를 나타내고 이를 예보관이 볼 수 있는 예상일기도와 같은 그림 형태로 표출해 활용하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이나 길 찾기 애플리케이션에서 현재 위치, 목적지를 입력하면 목적지까지 추천경로를 안내해 주는데, 길 찾기 애플리케이션에서 안내된 추천경로가 수치예보의 결과물, 실제 사용자가 목적지까지 가는 행위가 일기예보라고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수치예보의 원리를 처음 생각한 사람은 1904년 노르웨이 기상학자 비야크네스이다. 그의 영향을 받아 1922년에 영국의 리차드슨이 처음으로 수치예보를 시도하였는데, 그가 생각해낸 방법으로는 수치예보를 위한 수학계산에 무려 6만4천명이 동시에 동원되어야 하는 방대한 작업량이 필요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 한동안 수치예보를 시도하지 않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컴퓨터가 발명되면서 많은 양의 산술계산이 가능해져 과학자들은 다시 수치예보에 주목하게 되었다. 1948년 미국 기상학자 챠니가 대기운동에 대한 방정식을 간소화한 모델을 제시하였고, 1950년에는 노이만 등에 의하여 최초의 수치예보에 성공하게 된다.
날씨를 수치상으로 예측하려면 엄청난 양의 계산이 필요하고, 또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기예보를 서비스하려면 제한된 시간 내에 결과를 산출해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날씨 예보에는 가장 빠른 최신의 슈퍼컴퓨터가 사용된다. 현재 기상청이 운영하고 있는 슈퍼컴퓨터 4호기는 1초에 5천800조 번의 연산을 할 수 있는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 수치예보의 정확도는 전 지구적으로 정확한 기상관측 자료와 관측 자료의 촘촘한 분포와 관계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내비게이션의 예로 다시 설명하자면, 현재의 위치를 정확하게, 무슨 동 몇 번지 등과 같이 자세하게 목적지를 입력해야 하고, 내비게이션의 지도에서도 교차로, 신호등 개수 등이 자세하게 구성되어 있어야 오차가 없는 정확한 안내가 가능하다.
그런데 지구 상에는 70%가 바다이지만, 육상과는 달리 바다에서 직접 얻을 수 있는 관측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공기의 운동을 설명하는 수학방정식 계산 결과에 오차가 생긴다. 또한 공기의 운동을 설명하는 수학방정식을 계산하도록 만들어진 컴퓨터 프로그램을 수치예보모델이라고 하는데, 길 찾기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하는 스마트폰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애플리케이션의 실행능력과 완성도가 떨어지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수치예보모델이라는 소프트웨어가 뛰어나야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가 있다.
현재 기상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수치예보 모델은 영국 기상청의 수치예보 모델로 2010년에 도입해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 영국 모델은 우리나라 지형과 주변 대기 상황과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기상청에서는 우리나라 상황에 맞도록 최적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가 가속화 되면서 세계적으로 독자 기술로 기상예보 시스템을 갖추는 추세이다. 외국 수치예보모델은 변화하는 기상현상에 빠르게 대처하기 어렵고 기후변화에 따른 지역적 현상을 반영하지 못해 제한적이기 때문으로, 기상청에서도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환경에 적합하도록 우리 고유의 독자 수치예보모델을 제작 중이다. 우리나라 지형에 적합하고, 더 정확하며, 기상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개발하여 2020년에는 실제 예보에 활용할 예정이다.
현재 EU와 영국, 미국, 일본 등 7개 국가만이 독자적인 수치예보모델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이 완성되면 우리는 세계 5위 수준의 수치예측 정확도를 가진 국가로 발돋움함과 동시에 더 정확한 기상 예측으로 기상재해 발생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전준항

대구기상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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