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죽어도 산 사람, 살아도 죽은 사람

사회 양극화로 계층 간 갈등 심해져 사회 통합 우리가 극복해야 할 숙제 계층 간 사이 메워줄 넉넉함 가져야



타는 듯한 더위에 모두가 지치는 여름이다. 이제 한고비 넘겼나 싶지만, 그래도 여지없이 35도를 넘나드는 한낮이다. 기록적이라고 하던 1994년의 무더위가 기억에 남아 있지만, 이 역시 가볍게 뛰어넘는 것을 보니 이제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의구심을 하게 된다. 모두가 걱정하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불안이 점점 눈앞에 다가오는 것 같다.

에어컨 바람으로 지친 몸을 달래던 중, 10여 년 전에 수술했던 환자 한 분이 찾아왔다. 개원한 지 10년이 지나다 보니 그런 분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다. 오래된 챠트를 보고 진료실로 들어서는 얼굴을 보니, 예전의 그 모습이 남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함께 웃음을 지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 주위에서 하나둘씩 수술을 하는 것을 보고 문득 ‘나도 이제 고칠 데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병원이 생각이 나서 예전의 병원으로 나를 찾아왔다가 다시 이전한 곳으로 안내를 받아서 물어물어 찾아왔다는 것이다.

수술이 잘되어서 그런지, 수술 후 관리를 잘해서 그런지 아직 손댈 필요가 없는 상태라서, “아직은 괜찮으니 조금 더 주름이 생기면 다시 오시라”고 말하고 돌려보냈다. 가슴이 뿌듯해지고 마음 한편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해서 모처럼 몸속의 뜨거운 열기도 가시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도 비슷하다. 이럴 때면, ‘나는 과연 그 환자에게 어떤 의사였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환자 자신과 함께 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때로는 어려운 삶의 고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신뢰받는 동반자 같은 의사였는지 말이다.

얼마 전 우리의 마음속에 친구 같았던 한 국회의원이 유명을 달리했다. 누구는 비겁하게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한 것이라고 그를 폄하하는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평소에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로 여겨지는 듯하다. 이름 없이 사회의 밑바닥에서 고된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을 위해 힘쓰던 그의 모습 때문이다. 우리가 그 사람의 삶이 어땠는지 알아보는 가장 중요한 척도 중 하나를 꼽는다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이 어떠했는지 보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은 평소 그가 함께하고자 했던 이름 없는 사람들, 그의 모습을 사랑했던 사람들로 가득했다. 비록 그와 일면식도 없지만 그를 사랑했던 이들의 발길이었다. 그의 삶은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위처럼 단단한 세상과 싸우면서 그 틈새에 작은 새싹을 틔우고자 했던 노정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인지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눈길을 잃지 않아서 비록 그와 뜻이 다른 사람에게도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사람들의 마음은 이제 그가 했던 일을 마음속에 담고, 그의 뜻을 이어나가려는 다짐의 한 마당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그는 비록 ‘죽었으나 우리 마음속에는 오랫동안 살아 있을 사람’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멀쩡하게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보다 못한 평가를 받는 사람’들도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보곤 한다. 살아있음에도, 좋지 않은 일로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자신의 명예와 살아온 인생이 부정적인 이미지의 모습이 되어 차라리 죽은 자보다 더 못한 처지가 된 것이다.

이 사회의 일원으로 지내면서 우리 자신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 것일까? 진료실에서 수많은 환자를 만나는 우리 의사들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가장 믿을 만한 사람, 어렵고 힘든 문제에 처할 때 꼭 들어야 할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 즉 신뢰가 가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저 환자의 마음을 이용해서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는 것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그들의 소리를 경청하고 공감을 한 다음, 그들의 마음속에 울림을 줄 수 있는 말을 해 줄 수 있을 때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가 모두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현대의 한국 사회는 양극화로 인해 계층 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결합이 서서히 이완되고 사회 구성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좋은 말로는 다양화라고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다양한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숙제로 우리 앞에 다가서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서로에게 믿음을 줄 수 있고 깊은 신뢰의 기반을 이룰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는 결속력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에 열심인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우리 주위의 이웃들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와 시선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이제 각 계층 간의 ‘사이’를 메워줄 수 있는 넉넉함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서로 서로에게 ‘살아도 죽은 사람이기보다, 죽어도 산 사람’이 될 수 있을 때 좀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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