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흔적도 없는 대구 유일 마을 단위 독립운동지

<4> 여봉산

대구 동구 미대동 여봉산은 대구 유일의 마을 단위 ‘독립만세’ 운동 장소다. 하지만 여봉산 정상에는 나무만 무성할 뿐 독립운동 안내 표식과 기념탑, 비석조차 찾아볼 수 없다.


지난 17일 오후 2시께 대구 동구 미대동 747-15번지. 대구 유일의 마을 단위 ‘독립만세’ 운동 장소인 여봉산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여봉산을 올라가는 안내 표식은 물론 산길조차 없었다.

여봉산은 수풀이 우거져 한 발자국도 내딛기 어려웠고 주변 나무는 거미줄로 가득했다.

또 비탈길을 헤쳐 올라가는 동안 이름 모를 묘지도 가득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수풀을 헤치고 힘들게 산에 오른 지 30분가량이 지나 일제 강점기 시절 미대동 청년들이 ‘독립 만세’를 외쳤던 여봉산 정상에 도착했다.

힘들게 정상에 올랐지만 독립운동 기념탑이나 비석 등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무만 무성해 마을도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이곳은 사유지로 변해 그 어디에도 당시의 항일운동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독립운동정신 계승사업회에 따르면 여봉산은 대구 유일의 마을 단위 궐기의 독립운동지로 8인의 마을 청년이 모여 ‘독립만세’를 부른 곳이다.

1919년 4월26일 오후 10시께 채갑원, 채봉식, 채학기, 채의각 등 미대동 청년 4명은 마을 동쪽 옆 여봉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여봉산은 얕은 산봉우리가 있어 신속히 독립만세 운동의 시작을 알리고 마을 사람들의 동참을 권유하기 위한 적합한 장소였다.

이틀 뒤인 기존 4명을 포함한 8명의 청년이 같은 장소에 올랐다.

이들은 산봉우리에서 태극기를 휘두르고 동네 사람들의 눈에 잘 띄도록 ‘대한 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하지만 이날 독립을 외치던 마을청년 8인은 모두 구속됐다.

당시 일제 강점기인 터라 식민지의 청년들이 독립을 외치는 행동은 중대한 범죄였다.

이처럼 나라를 되찾고자 온 힘을 다해 독립운동을 펼쳤지만 여봉산 궐기는 기억하는 이조차 없고 기록조차 묻혀 있는 상태다.

현재 마을 주민도 여봉산에서 이뤄진 독립운동과 만세 운동을 주도한 8명의 열사에 대한 미담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여봉산은 팔공산에서 이어지는 능선 중 하나로만 알고 있을 뿐.

배한동 독립운동정신 계승사업회 상임대표는 “여봉산 독립운동은 8인의 청년들이 일제에 맞서 마을 주민들을 계몽하고자 펼친 용기있는 행동”이라며 “지금이라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대구 독립 영웅들의 넋을 기리고 제대로 된 역사를 알리는 기록물을 남기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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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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