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화산불고기단지

경주시 천북면 화산불고기단지는 한 때 불고기를 먹으려는 인파로 심한 차량정체현상을 빚을 정도로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이로인해 불고기를 판매하는 식당들이 줄지어 들어서 성황을 이뤘던 곳이다.
그러나 채소 위주의 건강식단이라는 음식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로 화산불고기단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성업을 이루던 40여 점포가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10여 업체만 남았다.
여전히 화산불고기의 옛맛을 잊지 못하는 단골손님들이 있어 명맥을 잇고 있지만, 많은 식당이 폐업하거나 오리고기, 순두부, 장어구이 등의 웰빙식당으로 변신했다.
최근 화산불고기단지가 변화하고 있다. 음식문화와 함께 골프, 목공예 등의 다양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시대적 감각에 맞춰 경치가 뛰어난 곳에 식사와 차를 함께 취급하면서 북카페 기능까지 갖춘 카페도 생겨나는 등 화산불고기단지가 다양한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곶뫼 화산

경주시 천북면 화산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강동면사무소에서 경주보문단지로 이어지는 지방도를 끼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천북면 성지리 소리못과 왕신리 왕신못 사이에 있는 분지다.
본래 꽃뫼, 곳메, 곶마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화산(花山)은 곶(꽃)과 뫼(산), 꽃이 가득한 산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으로 ‘곶뫼’ 등으로 불리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마을이름을 한자로 풀이해 ‘화산’으로 등록됐다.
마을 동쪽 연화봉에서 내려다보면, 분지를 중심으로 둘러 싸고 있는 산들이 마치 꽃잎처럼 생겼다고 하여 화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마을을 둘러싼 산에서 계절마다 많은 꽃이 피어 그렇게 불렀다고 전하기도 한다.
화산1리는 본래 꽃뫼와 용사골 안에 있던 ‘애재’와 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이 마을은 황씨와 문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애재마을은 1999년 왕신저수지에 수몰되어 사라졌다.
또 화산을 ‘서고북저남류동탁’(西高北低南流東晫)이라고 해석했다. 서쪽이 높고, 북쪽이 낮으며, 남쪽으로 물이 흐르고, 동쪽에 해가 일찍 뜬다고 붙인 말이다. 살기 좋은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옛 마을의 절반이 저수지로 변해 푸른 물결만 넘실거린다.
마을 동쪽 골짜기 계곡에 깊은 웅덩이들이 많아 생긴 모양에 따라 칼용치, 호박용치, 길용치, 함용치 등으로 불렀다. 전설에 의하면 제일 큰 웅덩이인 길용치에 살던 숫뱀과 그 아래 호박용치에 살던 암뱀이 서로 만나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웅덩이를 용추라고 부른다. 계곡은 용추곡, 용사골, 용사곡이라고도 불렀다. 지금은 저수지를 막고 길을 내면서 모두 메워지고 없어졌지만, 마을은 여전히 맑은 물이 흐르는 청정지역으로 남아있다.

◆화산불고기단지의 불고기

천북면 화산리 불고기단지는 1993년 8월30일 4개의 불고기식당이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불고기단지는 6개월이 지나면서 32개소까지 늘어나 성업을 이뤘다. 연접한 강동까지 합하면 숯불고기집이 50개 업체에 이르렀다. 당시 화산으로 들어서면 골목마다 고기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전국에서 한우 사육두수 제1의 도시 경주에 걸맞은 업종으로 소개되면서 손님들이 줄을 지어 몰려들었다. 불고기 식당이 성업을 이루자 농민들도 앞다투어 불고깃집을 개업했다.
그러나 그 영화는 길지 않았다. 웰빙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화산불고기단지의 식당은 하나 둘 문을 닫아야 했다. 찾아오는 손님의 발걸음이 뚝 떨어졌다. 2004년 불고기축제를 열어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노력했지만, 손님들의 발걸음을 돌리기에는 늦었다. 결국, 20여 년이 지난 지금 숯불 고깃집은 10여 곳으로 줄었다. 대부분 농민으로 전업하거나 오리고기, 장어, 순두부 등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지금 한우전문점으로 상가번영회에 남은 숯불 고깃집은 9개 업소가 전부다. 처음 숯불 고깃집으로 문을 연 1호점 ‘오복네숯불’은 옛날에 비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굴착기 기사로 전국 공사장 누비던 이동일(52)씨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2대가 함께 숯불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다. 화산불고기단지 상가번영회 회장을 맡은 이동일 회장은 “서해 바다, 당진 탄광촌 백석 캐는 작업 등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아버지의 부름으로 식당일을 시작했다”며 “지금도 마음은 답답하지만, 직업으로 생각하고 고기를 만지고 있다”며 웃는다. 이 회장은 “둘째 아들이 식당에 대한 뜻이 있어 물려줄까 생각하고 있다”며 “3대로 이어지면, 100년 되는 명문숯불식당이 되지 않겠냐”고 우스개를 한다.
오복네숯불을 비롯하여 25년을 꾸준히 숯불 고깃집을 이어온 식당들의 경영기법은 비슷비슷하다. 한결같이 품질 좋은 고기를 쓰는 것이다. 또 산에서 캐거나, 직접 재배한 채소로 장아찌를 담근 나물들을 밥상에 올리고 있다. 이 덕분에 화산불고기단지의 고기는 특별히 맛이 좋고, 값도 비교적 착하다. 인근 도시지역에서 2만5천 원 정도 하는 고기를 화산에서는 1만8천 원 선에 맛볼 수 있다.
찾아가기도 좋은 편이다. 경주는 물론 인근 포항, 영천에서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가까운 곳에 골프장이 많아 골퍼들의 식도락처로도 인기다.
화산불고기단지에 들어서면, 바로 만나는 청마루숯불은 문학의 향기가 짙은 식당이다. 들어서면 종이공예품들이 가득하고, 많은 책들이 꽂힌 책장이 손님을 맞이한다. 방마다 안주인 임경순(54)씨가 쓴 글들이 시화로 걸려있다. 임씨는 오래전 수필가로 등단한 문학도다. 청마루숯불은 25년간 이어오면서 물김치, 콩잎 등 지역에서 생산한 음식재료를 숙성시켜 만든 밑반찬과 직접 담근 된장을 식단에 올려 그 맛에 익숙해진 단골손님이 많이 찾아온다.
화산불고기단지의 단골손님은 포항의 포스코, 울산, 부산, 대구 등지에서 25년간 인연을 이어오는 팀이 많다. 단골손님들은 “어디에 가도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한 고기 맛 때문에 찾아온다”면서 “넉넉한 농촌인심과 깨끗한 먹거리, 옛날 어머니 손맛 같은 음식들을 맛볼 수 있어 찾게 된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화산불고기단지에 오면 허탕치고 되돌아갈 일은 없다. 식당마다 한 달에 한 번 쉬기도 하지만, 365일 쉬지 않고 영업을 하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골프장과 수상스키

▲ 화산불고기단지 입구 동쪽 야산기슭에 쉐르빌 골프장이 문을 열어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방문이 늘어나고 있다.
▲ 화산불고기단지 입구 동쪽 야산기슭에 쉐르빌 골프장이 문을 열어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방문이 늘어나고 있다.

화산은 경치가 좋고 인근 도시에서 접근성이 좋은 곳이다. 그래서 최근 문화예술은 물론 다양한 스포츠, 레저시설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화산불고기단지 입구에 들어서면, 동쪽에 골프연습장의 푸른색 그물망이 높게 걸려 있다. 그물망을 따라 들어가면, 산기슭에 화산쉐르빌 파3 골프장이 조성돼 있다. 식당과 커피숍 기능을 하는 하우스가 예술적으로 지어져 있고, 골프공을 때리는 청명한 소리가 주차장까지 들린다.
쉐르빌은 시원하게 드라이브 샷은 날릴 수 없지만, 60∼100m 파3홀과 230m까지 길게 조성한 파4홀도 준비돼 있다. 특히 오르막 내리막길이 적당하게 조성되어 있어 운동량도 제법 많다.
화산불고기단지 가운데에서 동쪽 산으로 진입로 공사가 한창이다. 태영에서 36홀 규모의 골프장을 조성하고 있다. 골프장이 조성되면, 화산불고기단지는 더 붐비게 될 것으로 기대가 크다.
화산불고기단지로 진입하는 강동 왕신저수지에는 수상스키와 다양한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는 수상스포츠타운이 자리하고 있다. 가을까지 수상레저를 즐기려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화산불고기단지를 찾는 손님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저수지 카페

▲ 화산불고기단지 입구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5분만 가면 작은 연못 소리지가 나오고, 소리지 제방 끝에 ‘소리지571’ 카페가 있다. 카 페는 외딴곳에 있지만 다양한 메뉴와 함께 특별한 풍경으로 많은 손님을 확보하고 있다.
▲ 화산불고기단지 입구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5분만 가면 작은 연못 소리지가 나오고, 소리지 제방 끝에 ‘소리지571’ 카페가 있다. 카 페는 외딴곳에 있지만 다양한 메뉴와 함께 특별한 풍경으로 많은 손님을 확보하고 있다.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꽃이 피네’
화산은 마을 이름에서 풍기듯 꽃동네다. 불고기단지에서 집집이 숯불을 피워 불이 꽃을 피운다. 숯불고기, 오리고기, 우렁이 쌈밥, 장어구이, 순두부 등 다양한 식당이 화단처럼 조화를 이룬다. 목공예, 골프장, 수상스키장 등의 스포츠, 문화예술촌까지 인근에 조성돼 화산은 꽃단지가 된다.
화산으로 접어드는 입구에서 동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5분만 운전하면, 이내 한적한 곳에 작은 연못 ‘소리지’가 나온다. 소리지 제방 끝에 특이한 구조의 건물이 눈길을 끈다. 대문도 없이 ‘소리지 571’ 이라는 생소한 간판이 서 있다. 가로등을 대신하는 간판에는 ‘차와 식사’라는 소리지 571의 성격을 알린다.
카페 마당으로 들어서면 전원적인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안으로 들어가면 또 아기자기한 실내장식이 시선을 끈다. 가운데는 책들이 쌓여 북카페로도 기능을 한다. 탁자를 앞에 두고 앉으면 사방이 훤히 트여 전망이 좋다. 서북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저수지와 야산, 하늘이 어우러져 서정적인 풍경을 선물한다.
이곳에는 소리지 만의 특색이 있는 메뉴가 있다. 진열장에 진열된 과일로 직접 갈아주는 과일주스, 삶은 고구마로 만들어주는 고구마라떼는 그 맛이 일품이다. 또 식사로 나오는 돈가스는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어서 부드럽다. 한적한 곳이지만, 풍경이 좋아서인지 주중인데도 찾아오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경주 화산불고기단지는 지난날 북적거리던 영화를 다시 찾고 있다. 웰빙에 밀렸던 화산이 힐링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화산불고기단지는 다양한 즐길거리로 새로운 경주의 힐링센터로 부각되고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