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6 후인 1961년 가을께,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희 육군소장의 아내 육영수 여사가 모 여성잡지에 인터뷰한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모범적인 가족관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3남2녀의 자녀를 갖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가정이다”고 한 기사를 한참 후인 고등학교 때 우연히 읽은 일이 있다. 그때는 그랬다. 1960년 출산율이 6.3명이었으며, 대개가 5형제 이상 심지어는 10형제 이상을 둔 가정도 더러 있었다.
20여 년 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목욕탕집 남자들’이란 TV드라마도 대중목욕탕을 운영하는 대가족의 일상을 다루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보기 드문 가정의 모습이었기에 신기하면서도 옛날 생각이 아련히 떠올랐다.
가족사진도 그랬다. 옛날에는 대부분의 집집이 회갑이나 잔칫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중심으로 수십 명의 아들, 딸, 손주가 병풍처럼 몇 겹으로 둘러섰다. 마치 세력과 명예와 화합의 상징처럼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요즘 유치원이나 학교 입학식 때 가족사진은 친가와 외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4명이 손주 한 명만 중간에 놓고 찍는 경우를 자주 본다. 중국의 도시학교 풍경도 이렇다. 바야흐로 이모도 고모도 형제도 삼촌도 없는 ‘나 홀로 신세’가 되었다.
다산시대(多産時代),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그때 1961년엔 1인당 국민소득 89달러로 세계 125개국 가운데 101번째로 가난했다. 초근목피에 보릿고개였다. 농촌엔 부잣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정이 식량난에 허덕이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던 배고픔 그 자체였다. 입하나 덜기 위해 자식들은 고향과 서럽게 이별하며 도회지로 몰렸고, 급기야 정부에선 가족계획이 단행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역전이나 광장에선 인구탑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무턱대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포스터에서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거쳐 아예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란 강력한 산아제한정책이 나왔다. 어찌 보면 이는 오늘날 저출산의 근원이 된 셈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 우(愚)였다.
이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출산율 0명대의 유일한 국가’가 된다니 심각한 문제다. 지난달 초 올해 합계출산율이 1명에도 못 미칠 거라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저출산ㆍ고령화위원회는 올해 출생아가 약 32만 명을 기록해 출산율 1.0명 아래로 떨어질 거라고 한다. 이는 작년에 36만 명에 1.05%보다 낮은 수치며, 더욱이 몇 년 내에 20만 명대에 진입할 거라고 내다봤다.
2002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저출산 정책이 물거품이 된 셈이다. 가임(15∼49세)여성 한 명이 낳을 자녀의 수인 합계출산율이 2명일 때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똑같이 유지되는데, 1.17명에서 15년간 등락을 반복하다 다시 1명 밑으로 추락했으며, 특히 젊은 인구가 가장 많이 사는 서울이 전국평균 아래인 0.8명이라는데 더 문제가 있다.
2006년부터 범정부 차원에서 무려 1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퍼부었는데도 전혀 ‘약효’가 없다. 인구현상에 대한 정부의 무지와 무관심, 정책이 보육 및 양육 시설 투자에만 집중한 점, ‘아기를 낳으면 손해’라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 등이 원인이었다. 저출산! 정녕 극복할 대책은 없는가?
먼저 ‘출산=행복’이란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위한 교육 없이는 백약이 무효다. ‘세상에서 아기가 주는 기쁨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감성적인 접근과 사회적인 의식 홍보도 중하다. 찔끔찔끔 해주던 경제 지원에서 피부에 와 닿는 출산 단기부양책, 대학입시제도 개선, 신흥희망타운의 월 소득상환액(맞벌이 634만 원)과 순자산 상한가(2억5천60만 원)의 대폭 확대, 비혼(非婚)출산도 동일한 지원, 여전히 2명대를 유지하는 프랑스정책도 참고할 만하다.
인구재앙이다. 더 큰 걱정은 “가까운 미래에 출산율이 상승하기 어렵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는 분석이다. 저출산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인구에 달렸다. 국정의 최우선과제를 저출산 극복에 두고 사생결단의 각오로 임하길 바란다.

이상섭

경북도립대교수 행정학

한국지방자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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