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보수꼴통’으로 매도당하며 밉상 받아온 대구경북이 국회의원들의 부적절한 언행과 처신 때문에 볼썽사나운 꼴만 보여주고 있다. ‘이부망천’ 발언으로 인천과 부천 지역 주민들의 공분을 산 모 의원이 최근 대구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 의원은 본의 아니게 인천과 부천시민들을 욕보이게 해 죄송하다며 한껏 몸을 낮췄다. 뜻은 그게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대구 국회의원이 뭐 그렇지”라며 지역민들이 함께 조롱받았다. 물론 당사자는 자유한국당을 탈당해야 하는 등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몇몇 어물전 꼴뚜기 때문에 대구경북인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이어 지난 6ㆍ13지방선거에서도 공천 파동을 되풀이하며 자유한국당의 몰락을 초래했고 친박 의원들의 안하무인격 처신으로 눈총받았다. 지역에서 무소속 및 민주당 돌풍의 빌미가 됐다.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진박’을 자처하며 공천권을 거머쥔 채 보무도 당당하게 대구에 입성했던 친박 의원들이다. 이들이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롱런에 걸리적거리는 인사들을 제거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인사를 내세운, 조자룡 헌 칼 쓰듯 공천권을 휘두른 것이 화근이 됐다.
이들은 전 정권에서 장관과 수석비서관을 지내는 등 화려한 경력과 대통령 총애를 등에 업고 행정 및 사법과 입법까지 넘나든 속칭 한 끗발 했던 사람들이다.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권력욕이 빚어낸 참사였다.
정치판에 시커먼 구정물을 일으킨 이들이 지방선거 후 일제히 침묵 모드에 돌입했다. 물론 자숙해야 할 처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각종 지역 이슈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지역구 활동도 뜸해졌다. 뭣이 예쁘다고. 알아서 긴 측면도 있을 것이다.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하고,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기도 한 모 국회의원은 요즘도 태극기 부대를 이끌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이 의원은 의리를 지키는 몇 안 되는 인물로 꼽힌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냉랭하다.
그런데 정부 부처에서 고위 공직을 지낸 이들이 국회의원으로 택호를 바꾼 것만 해도 가문의 영광일 터인데 무엇이 아쉬울 게 있다고 자리에 연연해 하며 태풍이 지나가기만 학수고대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들은 모두 각 분야에서 최고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물론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고, 국민의 심부름꾼이 되기 위해 진자리까지 불사하겠다면 그 정성이 가상키도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없는 것 같다. 당당하게 후회 없는 길을 가겠다는 이들이 없는 것이 이들을 국회로 보내 준 지역민들의 상처입은 자존심에 생채기만 더한다.
늦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폭탄선언이라도 해야 했다. 한 알 밀알이 되겠다는 각오로 모든 것을 던져야 적어도 존폐 기로의 지역 정치권에 한 가닥 숨통이라도 틔워 줄 수 있을 터였다. 당은 문 닫기 직전인데 혼자만 살겠다고 잔꾀 부리는 모습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당의 앞날이 너무 훤하다. 나도 살고 당도 살고 지역도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절묘한 수는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독이 오를 대로 오른 한국당이 다음 총선에서는 ‘학살’ 수준의 공천 물갈이를 단행해 승리를 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내부를 추스르느라 속내를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역대 자유한국당의 위기 극복 사례를 보면 길은 뻔하다. 어차피 버텨봐야 지역 현역 의원 대부분이 ‘아웃’된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도 예측하지 못한다면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
미국의 한 신문기자가 ‘미 상원의원 중 한 사람만 빼고 다 개’라는 내용을 기사에 썼다. 그런데 단 한 명의 상원의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기만 아니면 된다는 정치인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 준 일화다. 국민 모두가 밉상이라며 도끼눈으로 보고 있는데 나만은 예외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홍석봉

정치부문 에디터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