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어자신의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인간의 선택지는 오직 극

죽음은 물리적으로 숨을 거두고 심장이 멎는 것이다. 죽으면 인식도 종료된다. 죽음은 종교와 철학의 피할 수 없는 화두이긴 하나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있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두려움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인생 역정의 심판에 대한 불안감일 수 있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원한 이별이 두려울 수 있다. 절대로 돌아올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승의 행적을 심판하여 저승의 등급을 결정한다는 종교적인 가설이 일반적으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죽음은 타락하지 않고 선하게 살도록 경계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그런 면에서 죽음은 극단적인 타락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자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이다. 죽음은 인간의 일거수일투족과 표현하지 않은 사고까지 꿰뚫고 지켜보는 감시자이며 종교의 성립과 그 불멸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죽음에 대한 성찰과 사색은 결론이 없다.
죽음의 본질을 몇 줄의 글로써 결론짓고자 하는 시도는 무리다. 죽음은 인간의 영원한 화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살인은 다른 사람을 죽음의 세계로 밀어 넣는 것이다. 죽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나중에 선택하는 대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의지에 반하여 살인을 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살인은 가장 강력한 응징 대상이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모세의 십계’와 고조선의 ‘8조 법금’에도 살인에 관한 조항이 들어 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살인을 죄악시하고 있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살인을 중벌로 다스리고 있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시공을 초월하여 상호 고립되어 있는 사회에서도 살인을 최악의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원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살은 예외적인 현상이다. 두려운 미지의 세계로 스스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인식을 깨는 것이다. 자살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구체적 개별적으로 자살의 원인을 파고들면 그 사연이 차고 넘치겠지만 대충 뭉뚱그려보면 생활고, 병고, 실연, 절망, 명예 또는 수오지심 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굳이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고뇌나 번뇌 정도가 되지 않을까. 고뇌의 강도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강도를 넘어서는 경우,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현명하다. 고뇌와 죽음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인 신념과 의지가 지극히 상대적이고, 또 그에 대한 모범적인 가치체계가 존재할 수 없는 난점이 있기 때문에 자살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죽음으로 가는 길은 있지만 돌아오는 길이 없다는 점이 자생적 방어막이 되긴 한다.
종교는 죽음이라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현상을 매개로 미지의 사후세계를 설계하고 이를 주요 유인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자살을 죄악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부정이다. 인생이 고해와 같고 삶은 ‘스트레스 덩어리’라 규정하면서 사후세계를 미화한다면 죽음을 선택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후세계는 인간세상의 법규범이나 율법이 전혀 통하지 않을뿐더러 교감이나 소통도 전혀 되지 않고, 그 존재조차 명확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
사후세계에 간 사자는 전혀 통제가 되지 않고 상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사후세계는 인간세계의 시스템을 완전히 벗어나 있고, 사자는 완전 통제 불능이다. 사자를 심판한다든가 응징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자살은 인간세계를 탈출하는 수단이다. 삶의 고뇌에서 벗어나는 손쉬운 방법일 수 있다.
인생이 허무하거나 무상하다면 삶을 끝내는 방법이 자연스런 귀결일 수 있지만 그렇게 가르치는 현자는 없다. 인간이 원죄를 졌다면 굳이 꼭 살아가야 할 이유도 없지만, 과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죽음으로써 속죄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자살은 비단 종교뿐만 아니라 인간세상의 근본을 무너뜨린다. 인간세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자살은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성질이 아니다.
사후세계로 가는 길은 일방통행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가는 길은 자유지만 돌아올 길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극단적인 생각을 접는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인간의 선택지는 오직 극복하는 것이다. 자살은 생명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살아야 한다.

오철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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