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를 보면 연인이나 부부가 감정이 상해 서로 다투면서 상대방이 자신의 입장을 배려하거나 이해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너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말이다. 제삼자가 보기엔 둘 다 마찬가진데 서로는 상대를 그렇게 생각한다. 이를 사회심리학에서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이고 불리한 정보나 사실에는 눈을 감는, 어찌 보면 너무나 인간적인 심리하고나 해야 할까. 그런데 이 확증편향이 집단이나 국가 등의 단위로 범위가 확대된다면 문제가 절대 간단치 않다.
최근 정부는 2019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오른 시간당 8천350원으로 결정해 발표했다. 이에 대해 우리 사회는 지금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경제계는 경제계대로, 노동계는 그들대로 이해관계에 따라 옳다, 그르다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경영계를 대표한다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안에 대해 업종별로 구분 적용하지 않은 점과 영세중소기업, 소상공인의 경영난 등을 이유로 강력 반대하고 있다. 특히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정부안 불복종운동까지 거론하며 정부결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편의점주들의 주장을 보면 대략 이렇다. 가맹 본사의 횡포(근접출점 및 높은 가맹점비), 높은 카드수수료 등으로 이미 심각한 경영압박을 받는 상황인데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인건비까지 올리면 점포를 걷어치우라는 것이냐고.
편의점 상황을 한번 따져 보자. 최근 발표한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자료에 따르면 담배는 점포별 연매출의 약 5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만큼 편의점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평균 4천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팔면 전체 이익이 9%인 405원인데, 이를 카드 결제하면 점주가 204원, 카드회사가 112,5원, 가맹 본사가 88.5원의 수익을 챙겨간다. 결제수수료의 불만은 아마 다른 상품도 대개 비슷하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경영난의 주원인으로 거론돼 온 결제수수료율 낮추기가 왜 최저임금 인상에 밀려나는가.
최저임금 인상은 업종별 여건과 개별 기업체의 상황에 따라 영향이 다를 것이므로 일반화해서 언급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다. 다만 최저임금 인상만이 소상인 경영난의 주원인인 것처럼 몰아가는 현재 상황이 옳은가 하는 점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는 데 목표가 있는 최저임금 인상은 여러 가지 여건상 지금 힘들지라도 방향성에서 맞는다면 그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보완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터넷에 대구경북민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악성 댓글이 쏟아져 지역민들의 공분을 샀다. 대구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과 대구 오염 수돗물 사고가 빌미였다. 네티즌들은 ‘대구 보수 놈들 뭘 해도 이런 식이다’ ‘자유한국당 뽑았으니 알아서 해라’ 하며 정치적 이유를 들며 지역민 비난에 열을 올렸다. 급기야 대구시장까지 나서서 이들에게 자제를 요청했을 정도였다. 선거 때면 지역민의 정치 성향을 비판하는 댓글들이 올라온다. 이에 대해 지역에서는 오히려 의연하게 대처한다. 점잖은 이들은 ‘되지 못한 인간들이 하는 짓거리’라고 무시하기도 하고, 좀 열정적인 이들이라면 ‘호남은 뭐 다른가?’라고 이들을 타이르기도 한다.
우리는 지역주의에 오랫동안 멍들어 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에다 얼마 전부턴 보수, 진보라는 진영싸움이 가세했고 요사이는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대립, 갑을의 충돌, 그리고 남여 간의 상대성 혐오 현상까지 곳곳에서 분열과 편 나누기가 진행하고 있다. 뿌리를 캐보자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놓고 못 본체 하기엔 사회 갈등이, 특히 집단 간의 대립이 임계치로 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영국 런던대 교수였던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우리가 옳다고 하는 만큼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 언제 틀릴지는 알지 못한다’는 말로 외눈 보기, 즉 확증 편향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래서일까, 기업에서는 CEO의 확증 편향을 막고자 집단결정 체제를 도입하거나 로마 가톨릭의 ‘악마의 변호사’ 역할제를 시행한다고도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누구에게 악마의 변호사 역을 맡기나.

박준우

부국장대우 독자여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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