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없었던 정책이 빚어놓은 실패들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의 취임 일성이 “미래를 위한 가치논쟁과 정책논쟁이 정치의 중심을 이루도록 하는 꿈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의 꿈대로 될지 아닐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일단 방향은 잘 잡은 것 같다.
흔히들 보수는 ‘죽어야 다시 산다’느니 ‘자유한국당을 해체하고 새로운 정당이 나와야 한다’느니 하는 감정적 결단을 내세우는 데 반해 김 위원장은 일단 명분론보다는 실천적 방안을 제시했고 그 방향도 옳기 때문이다. 또 최근 발표된 조선닷컴의 여론조사결과와도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여론조사 결과는 이렇다. ‘보수가 살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문재인 정권과 강하게 싸우라’는 것이 1번이었다(63%). 그동안 논객들의 글은 대체로 ‘인적청산을 하고 과거와 단절하라’는 것이 주류였다. 그런데 이 조항은 지지율 면에서 1번의 절반인 32%에 그쳤다.
이것은 인적청산이라는 결과는 항상 선명성 경쟁을 낳고 이는 결국 계파 간 갈등만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았다. 역사에서도 원리주의는 언제나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느닷없이 며칠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년은 외교ㆍ안보 이슈로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 정부의 성패는 경제 문제, 국민이 먹고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지금 너무 초조합니다”라고 토로했다. 시중에서 번지고 있는 경제실패론에 대한 반응이다. 이어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까지 펴오던 ‘경기회복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신을 버렸다.
그리고 현 여권은 경제위기와 실패의 책임을 ‘전 정권의 탓’으로 돌렸다. 과연 그럴까. 어느 국가든 경제위기의 처방은 노동개혁에서부터 출발한다. 전 정권인 박근혜 정부도 성과연봉제 등 얼마간의 노동개혁은 이뤄놓았다. 그런 것을 현 정부가 폐기시켜버리지 않았던가.
또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중소기업 1천994곳이 해외로 나갔다. 최저임금제 시행 등 경제환경을 나쁘게 하지 않았는데 나갔을까. 그것도 5년 전보다 무려 700여 곳이 늘어난 숫자로 말이다. 이것도 전 정권의 책임인가?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이 있다. 노동보호가 너무 잘 돼 있어 곧잘 나라가 휘청거리는 프랑스에서는 젊은 개혁대통령 마크롱이 “게으름뱅이, 냉소주의자, 극단주의자에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며 칼을 빼들었다. 지지율이 반 토막 났어도 밀어붙이고 있다. 1980년대 대처 영국총리가 영국병을 고친 것도 합의정치가 아니라 신념의 정치였다. 하긴 우리나라 노무현 대통령도 “민심을 그대로 수용하고 추종만 하는 것이 대통령의 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뭐든지 촛불의 명령이라는 등의 이유로 대중의 취향만 따르는 현 노동정책이 옳은 것일까.
현 여권에서는 우리나라가 망한다면 전쟁 아니면 원전사고라고 말한다. 현 정권의 탈 원전 정책의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의 마크롱도 극단주의를 왜 싫어하는지 알 것 같다. 결과적으로 세계 최고의 원전기술력을 갖춘 대한민국은 600조 원의 세계시장을 보고만 있어야 할 신세가 됐다. 잘못된 정책이 빚은 결과다.
평화 무드를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현 정부는 북한이 핵 폐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전방에서 짓고 있는 방어진지 공사마저 중단시키고 있다고 한다. 지난 27일 정전일에는 병력 12만 명을 줄이는 ‘국방개혁 2.0’이 알려졌다. 그리고 평화도 현재의 시점에서는 ‘핵 있는 평화’로 전락한 느낌이다. 핵 폐기라는 이슈가 핵 동결로 슬그머니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은 핵을 폐기하지 않는다는 핵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된다면 큰일이다. 안보야말로 여론에 따르면 안 되는 영역이다.
모두가 보수ㆍ우파 시절에는 없었던 일들이다. 따라서 정책에서는 분명 우파가 우위에 있었음을 현실이 증거해 주고 있다. 기 소르망의 좋은 경제정책과 나쁜 경제정책의 결과가 그렇다. 남과 북은 같은 조건에서 출발했으나 좋은 경제정책 선택으로 남은 북보다 GDP(국내총생산)가 50배나 많다. 보수의 살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가 나가야 할 길이 정책경쟁, 정책정치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여기서 보여주고 있다.

서상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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