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지나간 날에 대해 상념에 잠기곤 한다. 그것도 매우 깊고 잦으며 어떨 땐 인기척도 못 느낀다. 아마도 코앞으로 다가온 정년에 대한 감회와 앞으로 어디서 무얼 하면서 어떻게 살까, 처음 해볼 소위 백수(白手)에 대한 낯섦, 다시는 못 올 가버린 날들에 대한 아쉬움, 사무치는 회한 같은 게 이유인 듯 보인다. 퇴임 소감을 묻는 지인에겐 아닌 척 해보지만 솔직히 기분이 좀 그렇다.
좋았고 잘한 일보단 어리석었고 부끄러운 일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한 마디로 인생을 너무 어렵게 살아온 것 같다. 물론 어두웠던 시절에 학창시절을 보냈었고,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해 보지만 그래도 좀 더 여유를 갖지 못한 후회스러움이 먼저다. 가졌다면 꽤 괜찮은 삶을 살았을 텐데 하면서 이제 와 깨닫는다. 걸어왔던 길을 한 번만 뒤돌아봤어도 충분히 가능했기에 더하다.
남을 너무 의식하면서 산 것 같다. 남들은 나에게 별 관심도 없는데 나 혼자만 호들갑을 떤 것 같다. 나를 향해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들을 적당히 무시하고 한쪽 귀로 듣고 흘려버렸어야 했다. 그런데 일일이 대응하고 마음을 쓰면서 살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을 걸 하나라도 더하면서 알차게 살 걸 이제 와 깨닫는다. 자존심보다는 자존감이 더 중하다고 입버릇처럼 떠들어놓고는 말이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산 것 같다. 식탐도 술탐도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옛날에 가난하여 못 먹었다며 둘러 되지만 다 비겁한 변명이다. 말로는 버려야 새로움이 보이고 멈추어야 비로소 평화가 보인다고도 했다. 정말 그렇다. 남을 위한다면서 하는 모든 행위들은 사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었다는 것도 이제 와 깨닫는다.
너무 잘난 체하면서 오만하지는 않았는지 염려된다. 알량한 지식 몇 개와 남보다 좀 더 해본 경험을 갖고, 업신여김과 교만함의 여부다. 고의성은 없어도 일부에겐 그렇게 비쳤을 것이라 이제 와 깨닫는다.
오만(傲慢)은 ‘태도가 건방지고 행동이 거만하여 사람을 업신여기다’는 참 나쁜 말이다. ‘인생은 오만한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 ‘오만할수록 결국 끊어지고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원불교 법어에도 나온다.
오만하면 떠오르는 맹사성(1360∼1438)의 일화다. 열아홉에 장원급제하여 스무 살에 파주 군수에 오른 그는 뛰어난 학식과 젊은 나이에 높은 벼슬로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맹사성은 그 고을에서 유명하다는 무명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 생각하오?” 그러자 스님이 대답하기를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고 하자, 맹사성은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스님은 녹차나 한잔하고 가시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맹사성의 찻잔에 찻물이 넘치는데도 계속 차를 따르자,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자 스님은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부끄러웠던 맹사성은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문지방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물끄러미 웃으면서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맹사성은 이를 교훈으로 삼아 훗날 조선의 청백리요 두 번째 명재상이 되었다.
우리 모두가 오만이 넘치면 반드시 독선하고 망함을 잠시 잊은듯하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이제 정말 베풀며 살자. 남에게 피해가 안 가는 범위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경험해보고 싶은 것, 그동안 체면 때문에 못 만났고 못해 본 일까지도 만나고 하면서 살고 싶다. 다른 사람의 눈치도 덜 보고 고민도 덜하면서 말이다. 바보처럼 이제서야 보이기에 깨닫는다. 다가올 후반기 인생은 나를 최대한 대접하면서 아름답게 살련다.

이상섭

경북도립대교수 행정학

한국지방자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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