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에게 결혼·출산은 기대 난망 직장 구하기 어려운 현재, 미래 어두워 미래 담보할 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족계획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던 사회 선생님의 말씀이 생생하다. 산술적 계산 공식을 흑판에 써놓고 ‘1인당 국민소득’을 올리려면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애국심이 절절했다. 누구도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따위의 가족계획 표어를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었다. 피임과 정관수술을 적극 권장했다. 예비군훈련 때, 정관수술을 시술하면 훈련면제에 빵까지 주었다. 두 자녀 이상 갖는 것은 미개인이었다. 출산율은 곤두박질쳤다. 이제 1명이 깨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상황이 역전됐다. 이젠 출산율 제고가 절박하다. 녹색혁명이 낳은 시대적 변화에 스텝이 한참 꼬인 측면이 확실히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가족계획은 정당하고 합리적이었다. 환경이 급변했을 따름이다. 다만, 가족계획이 저출산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실책이었다.
저출산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으로 나타난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이다. 그 원인으로 여성 취업 증가, 보육 및 교육의 어려움, 개인주의 확산, 청년취업난 등을 꼽을 수 있다. IMF사태로 인한 경쟁 격화와 글로벌화도 한 원인이다. 그 외에도 더 많은 원인을 거론할 수 있다. 이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문재인 정부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았다. 늦은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을 기대했지만 기존의 범주를 크게 벗어난 것 같지 않다.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즉 ‘일과 생활의 균형’이란 다소 추상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이 새롭긴 하지만 성과달성을 위한 목표수단 체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목표관리가 가능한 명확한 지표 제시가 필요하다. 감성적 캐치프레이즈로 명확한 목표를 대신할 순 없다. 책임 회피 의도라고 의심할 소지도 없지 않다. 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이 절실하다.
인간도 종족보존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출산이란 선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선행되어야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온다. 본능을 거스르는 현 상황을 일단 생존 위협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일까? 일자리가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청년실업은 심각한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미래를 어둡게 하는 뇌관이다. 부모에게 더부살이하는 젊은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기대 난망이다. 먹고살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일 할 직장이 있어야 미래가 있고, 미래가 있어야 비로소 결혼과 출산이 선택된다. 일 할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현재 상황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급감할 글로벌 미래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현재와 같은 낮은 출산율도 감당하지 못하고 일자리를 주지 못하는 정부가 젊은이들에게 출산을 권장하는 것은 허구다. 출산을 기피하는 행위가 오히려 이성적이다. 지금 상황은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건 누가 봐도 같다. 세월이 바뀌면 우리 젊은이들의 판단이 현명한 것으로 드러날지도 모를 일이다.
저출산 대책은 인간이 평온하게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 되어야 한다.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비록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느껴져야 한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불안한 미래만이 기다리는 현실에서 2세를 생각할 바보는 드물다. 가치관 재정립과 경제 성장이 절박한 이유다.
저출산은 우리 인간이 자초한 화인지도 모른다. 조물주는 종족보존의 본능을 주었으나 인간은 그것을 인센티브와 부담으로 분리시켰다. 피임이나 낙태라는 방법으로 무거운 짐을 벗었다. 어떤 동물도 해내지 못한 획기적인 일이다. 인센티브인 쾌락만 취하고 성과물인 출산과 양육을 회피함으로써 조물주의 원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지만, 피임과 낙태를 금하고 성행위엔 반드시 자녀생산이 수반되어야 한다면 인구 문제는 조물주의 뜻대로 균형을 유지할 것이다. 자연은 오직 적응하는 자만 선택한다. 어쨌든 우리는 본능파괴라는 도전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운명에 있다.

오철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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