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 전망에도 우리는 평화 타령만


현대의 세계는 누가 뭐래도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ㆍ미국 주도 세계평화)시대다. 물론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 기초를 닦은 것이 종전 직전인 1944년에 있었던 브레튼우즈협정이 아닌가 한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정함으로써 일단 경제는 미국 중심으로 됐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미국경제는 세계총생산(GDP)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미국자본주의도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그 증거의 하나가 1960~70년대 일어난 달러화 위기, 금본위제의 붕괴 등이다. 쌍둥이 적자를 견디지 못한 미국은 결국 1985년 당시 잘 나가던 독일과 일본에 대해 그들의 화폐인 마르크와 엔화에 대해 평가절상을 요구했다. 그 결과 엔화는 달러당 200여 엔에서 2년 후엔 100여 엔으로 내렸다. 돈값이 배로 불어난 일본은 그 돈으로 미국의 건물을 사들이는 등 돈 쓰는 재미까지 봤다.
그러나 그 재미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 들면서 일본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불황을 겪었고, 독일은 세계경제의 모범생에서 ‘유럽의 환자’로 전락했다. 독일은 슈뢰더 총리의 개혁(어젠더 2010)으로, 일본은 아베 총리의 아베노믹스(환율절하 등)로 위기를 극복했다. 여기에는 패권경쟁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은 그 양상이 전혀 다르다. 무역전쟁이기도 하지만 패권경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가령 대외적으로는 지금까지 지켜온 도광양회(韜光養晦)니 화평굴기니 하는 수동적 자세에서 갑자기 주동작위(主動作爲), 대륙굴기로 그 구호를 바꾼 느낌이다. 공식적으로 구호를 바꾼 것이 아닐 뿐이다.
이외도 미국식 경제를 강조하는 워싱턴컨센서스에 맞서 중국식 경제를 강조하는 베이징컨센서스를 강조한다든지 중국의 꿈(中國夢)을 자주 언급한다든지, 최근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미국식 민주주의에 맞서 중국식 민주주의에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환구시보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중국식 민주주의 지지가 65%인데 비해 미국식 민주주의는 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식 민주주의라는 낯선 용어를 중국인들은 자랑으로 여긴다고 한다.
모두가 경제 규모가 미국에 접근하자 나온 상황이다.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는 WTO(세계무역기구)가입 당시인 2001년은 미국의 13%에 그쳤으나 지난해(추정치)는 68%까지 접근했다고 한다. 닉슨의 후회처럼 소련보다 더 큰 괴물을 기른 것이다.
특히 미국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소프트웨어, 민간항공기, 특수반도체 등 소위 미국만이 가지는 지대에 대한 도전이다. 여기서 지대(地代)란 전통적으로 토지임대수익을 넘은 무역이론서 말하는 알짜권리를 말한다. 중국은 제조 2025라는 첨단사업 육성프로젝트로 도전한 것이다.
그 증거가 2013년 중국과학원이 국가건강보고에서 지적한 ‘미국은 전 세계 패권적 이익을 싹쓸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중국이다’는 주장이다. 그 피해액은 3조7천억 달러라고도 했다.
따라서 이 전쟁은 플라자합의처럼 합의로 끝날 가능성보다 어느 한 쪽이 사실상 항복을 하는 그야말로 초유의 무역전쟁으로 끝날 가능성이 더 크다. 옛날 같으면 도전에 응징으로 맞서는 전쟁, 즉 ‘투키디데스의 함정’ 일수도 있다.
결론은 무역의존도가 68%인 우리나라가 가장 피해를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평화에만 매달리는 우리 정부의 태도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으로 본다. 세계경제의 34%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이다. 이들이 무역으로 싸운다면 세계경제는 1.4%가 증발할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오고 있다.
나쁜 선례는 반복되지 않겠지만 1930년대 대공황 때 진정 세계경제를 그르친 것은 주가 대폭락이 아니라 보호주의법인 스무트-홀리 관세법이었다. 보호주의가 얼마나 경제에 나쁜 조치인지 세계는 경험했고 또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대외무역 의존도가 제일 높으면서도 준비가 없는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

서상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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