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아쉬움 관계 중요성 알게 해지방자치·학교 발전도 ‘사람’서 시작우리 삶 ‘주고받음


지난달 중순에 정년퇴임을 두 달 남짓 남기고 고별강의를 하였다.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지난해 종강 후에 이별연습을 진하게 하였기에 이번에는 말없이 조용히 떠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인들의 청을 핑계 삼아 학교 정문에 고별강의를 알리는 현수막도 걸었고, 마지막 강의라서 그런지 재학생 외 일부 졸업생과 출입기자들까지 참석한 가운데 헤어짐을 고(告)하였고, 꽃다발도 받고, 케이크도 자르고, 노래선물도 받았다.
참석자들에게 “헤어짐이 아쉽다”는 말보단 “정년을 축하한다”는 인사말이 월등히 많은 걸 보고는 왠지 모르게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는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 회자정리(會者定離)의 무상함이 문뜩 떠올랐다.
그래, 때가 되어 떠남은 당연한 이치인데 뭘 그토록 미련을 떨었는지 이제 와 생각해보니 겸연쩍기까지 하다.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거자필반(去者必返)도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떠나는 아쉬움에 꽤 많은 말을 했다.
먼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회고와 과제’에선 어느덧 지방의회 부활 27년, 민선 자치 23년이 흘렀음을 지적하고, 정권 연장의 도구란 슬픈 운명 속에서, 그것도 6ㆍ25 와중인 1952년에 태어나 9년간 시행하고 30년간 중단되었다가 또다시 여ㆍ야간 ‘정치적 흥정’으로 부활한 역사임을 되새겼다.
척박한 자치토양 위에서 온갖 시행착오도 있었으나, 주민들 ‘삶의 변화’와 주민의 지위가 ‘통치의 객체에서 주체’로 바뀐 점과 지방권력의 기회균등을 통한 ‘신분의 격상’(6ㆍ13지방선거 전체 당선자 수 4천16명) 등이 관치행정과 큰 차이였다고 회고하였다.
지방자치 정착의 선결과제로는 주민의 참여와 통제 속에 ‘참여민주주의의 완성’과 ‘지방의회의 혁신’을 통해 지방정부의 큰 난제인 부정과 비리의 근절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론 행정안전부를 ‘지원부서’로 전환, 지방세목 신설 등 ‘지방재정 조정제도’의 강화, ‘파산(예비) 선고제 도입’으로 예산낭비 방지, 지방의원의 분발 등을 제시하였다.
학교 발전을 위한 고언(苦言)도 덧붙였다. 개교 1기 교수로서 학교가 좀 더 발전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남이 못내 아쉽다.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통감한다.
혹자는 ‘학령인구 감소’보다는 내부 문제, 특히 개교 후 계속 되어온 ‘낙하산 인사’를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대학에 문외한인 퇴직 공무원들의 안식처로 전락하였고, ‘종신 보직’과 구성원 간 편가르기도 일조하였다고 한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진정한 소통을 통한 인사 탕평’만이 답이라고 고언 했다. 탕평 없는 발전은 공염불이고 죽은 조직이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다. 관용(寬容)이 넘치면 독이 된다는 경고를 간과함도 한 이유로 들었다.
퇴임 소회와 학생들에게 당부도 전했다. 지나간 22년의 세월, 인생에 가장 황금기란 ‘중년(中年)’을 이곳에서 보낸 셈이다. 소중했던 나의 중년 시절은 실패하였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선택과 집중’의 실수가 먼저다. 지나치게 ‘소신과 명분’에만 치중한 나머지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한 어리석음이었다. 모든 것이 ‘∼관계’에서 시작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떠난다.
성공한 관계의 마음가짐은 만나는 사람마다 마치 ‘난로’ 대하듯 해야 한다. 즉 ‘화이불류’(和而不流-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다)의 자세다.
우리의 삶은 ‘주고받음’의 연속이다. 좋은 관계는 ‘도움’에 대한 감사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고, 많이 주고 많이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오만(傲慢)함도 경계해야 한다는, 맹사성의 일화에 나오는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다’는 교훈도 절대 잊지 말기를 당부했다. 먼 훗날 다시 만날 때는 지금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더 좋은 곳에서 만나자. 앞날에 행운과 건투를 기원하면서 이제 여러분과 이별을 고한다.

이상섭

경북도립대교수 행정학

한국지방자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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