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우리나라에서 보수정당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없다’는 답이 더 많을 것 같다. 왜냐하면 6ㆍ13지방선거를 통해 ‘보수 참패’라는 판정을 내린 국민의 판단이 그렇기 때문이다. 정치 평론가들도 역대 어느 정권은 물론 어느 왕도 지금처럼 국가권력과 민간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정권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에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은 주장도 있기는 하다. 즉 ‘보수정당을 자칭하는 자유한국당의 참패이지 보수의 참패가 아니다’라는 다소 말장난 같은 해석이다. 그래도 멸절은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 우리 민주주의가 절름발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생각나는 한 정치인이 있다. 전 영국총리였던 캐머런이다. 그는 지난해 우리나라에 와서 남긴 한마디가 있다. 즉 “보수주의의 특징은 뭔가를 지키고자 하는 것인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뀌어야 한다는 말은 보수ㆍ우파나 진보ㆍ좌파를 막론하고 어려울 때면 항상 튀어나오는 상투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캐머런의 충고는 다른 의미가 있다. 그의 성공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국병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서 ‘해가 지는 나라’로 바꾼 괴질이었다. 이 병을 치유한 사람이 대처리즘으로 유명한 대처 총리이다. 이 개혁 덕분에 보수당은 18년을 집권했다.
이어서 1997년 노동당 정권이 보수당을 대신한다. 노동당의 블레어 총리 역시 개혁으로 성공한다. 당시 세계를 뒤덮은 거대 물결은 신자유주의였다. 시대를 거역하지 않고 따랐다. 즉 신자유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노동당의 규약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기는 개혁을 한 것이다. 거대 기업의 국유화 폐지와 노동시장의 유연성 인정 등이 그것이다. 소위 신노동당이다.
런던정치경제대학의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이론이다. 좌파의 장점에다 우파의 장점을 합친 것이다. 당연히 노동당 내에서는 배반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어떻든 그는 이 개혁으로 13년간 노동당의 시대를 열었다.
2010년 총선서는 다시 보수당이 집권한다. 이때 캐머런 총리 역시 개혁으로 노동당을 이겼다. 그는 노동당의 블레어처럼 모든 것을 바꾸자고 했다. 지금 보수당이 우측에 치우쳐 있다면 중도우파로 가야하고, 중도우파에 있다면 완전 중도까지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중산층 중심의 기존 틀을 벗어나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젊은 보수 유권자와 소수민족 유권자까지 끌어들여 보수당이 새로 태어나다시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보수당 내에서는 좌파라든가 하는 비판이 일었다. 그래도 그는 지금의 보수당의 시대를 열어놓았다.
물론 영국의 사례와 우리의 정치환경은 다르다. 따라서 하나의 참고 사안일 뿐 모방할 정도는 아니다. 우선 남북 대치나 분단 상황이 아닌 점이 그렇다. 따라서 우리는 집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국가안보이다. 가령 지금의 시대 흐름은 평화다. 그러나 평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라이다. 평화를 지키려다 나라를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핵 있는 평화도 평화다’라는 논리도 있다. 평화무드에 휩싸이면 핵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평화가 유지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상대의 선의(善意)에 너무 기대는 위험이 있다. 따라서 ‘핵 있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는 보수의 정치 신념까지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독일병의 치유를 위해 슈뢰더 총리가 인기 없는 어젠더2010을 택해 권력을 잃은 대신 독일을 구한 사례도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얼마든지 제3의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세계화 시대에 맞는 남북관계 정립이나 통일 그리고 한미동맹 등이 그렇다. 한미상호동맹은 양보할 수 없는 과제이지만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논리 개발이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나 사회 문제에서는, 양극화나 경제민주화 그리고 복지 등에서는 캐머런처럼 좌파 소리를 들을 만큼의 개혁이 필요하다. 우파가 아무리 좌파정책을 채택해도 좌파가 좌파정책을 쓰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보수의 가치는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보수의 변화이고 개혁이다.

서상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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