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에너지 균형조절 시스템 잉여 에너지 체지방으로 저장해 약간의 지방 유지하는 것이

비만은 신체 내에 지방질이 정상보다 과다하게 축적되어 있는 상태, 지방의 총 무게가 남자는 자신의 체중에 25% 이상, 여자는 30% 이상일 경우를 말한다. 근육이나 골격이 많아서 과체중인 사람은 비만이라 부르지는 않고, 몸무게는 정상이지만 상대적으로 근육량이 적고 내장지방이 많아 마르고 배만 볼록하다면 비만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지금도 비만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40년 전 비만 인구가 1억500만 명, 2016년도에는 6억4천100만 명으로 6배 증가한 수치이며, 이런 추세라면 2025년엔 5명 중 1명이 비만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류에게 비만이 증가하게 된 것은 고열량 고지방의 음식이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최근의 일이고, 비만을 보는 시각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1900년대 이전에는 지방을 질병에 걸렸을 때 유용하게 사용될 비축분이라 여겼으며 평균이상의 체중을 부의 상징으로 보았다. 1900년대 초부터 비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비만이 폭식과 자기 통제력의 상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고, 사회적으로 날씬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간의 소화기관은 양이 많고 낮은 혈당, 즉 채소 같은 음식을 섭취하는 데 최적화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에너지 밀도가 높고 당지수가 높은 음식을 처리할 수 있는 생리적 유연성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고혈당 고지방의 음식들은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분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시스템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 선조들이 상당한 위험과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얻고 싶어 했던 이러한 유형의 귀한 음식들을 현대에 와서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해도, 생물학적으로 내재한 방향성 즉 맛있다고 느끼는 감각을 순식간에 바꿀 수는 없어서 이에 대한 욕망도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좋은 음식을 갈구하는 현상은 음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과거에 비해 절대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지방은 뇌의 성장과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영양소이며, 1kcal에 해당하는 지방의 무게는 0.11gm에 불과한 대단히 효율적인 에너지의 저장소이다. 또한 지방조직은 단순히 저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활발한 내분비 기능과 에너지와 식욕을 조절하는 중요한 작용을 하며, 여성의 생리적합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른 상태로 태어나면 난소의 기능이상 가능성이 크고, 청소년기에 마르면 초경이 늦어지기도 하며, 성인 여성이 마르면 배란주기가 불규칙하거나 사라져 임신을 못할 수도 있다. 이를 본다면 요즘 여성들의 마른 체형 선호가 임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는 절대로 과한 것이 아니다.
최근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천은미 교수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과체중일수록 결핵에 적게 걸리고, 마른 사람이 결핵에 잘 걸리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지방조직이 면역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고, 다이어트를 많이 하는 20대 여성들의 결핵 빈도가 높아지는 이유 중의 하나에 지방조직 저하가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인간의 에너지 균형조절 시스템은 에너지 균형을 중등도의 플러스 상태로 유지하면서 잉여 에너지를 체지방의 형태로 저장하는 쪽으로 진화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약간은 살이 찐 듯 유지하는 것이 최적화된 인간의 형태이고, 평균 체중인 사람은 생명에 필요한 최소 에너지 요구량을 한 달 이상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를 저장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21세기 신종 전염병’으로 지목한 것처럼 고도비만은 당뇨병, 고혈압, 뇌경색, 천식 등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요즘은 약간만 살이 쪄도 마치 고도비만에 걸린 듯 행동하며, 50대 주부, 10대 소녀, 심지어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다이어트가 일상의 관심사가 되었고, 건강보다는 외모지상주의가 우리 사회에 비만에 대한 강박증을 만들어 버린 듯 보인다.
정상체중을 지닌 여학생의 41.2%가 자신이 뚱뚱하다고 느끼고, 여학생 10명 중 6명이 저체중을 이상적인 체형으로 생각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있으며, 10명 중 한 명꼴로 거식증을 앓는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비만이 상업적인 영역과 결합하면서 건강보다는 미적인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잘못된 상식과 인식이 만연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아름다움의 왜곡된 콤플렉스, 이를 통해 벌어지는 상업주의에 찌든 다이어트, 성형, 방송은 우리가 반드시 버려야 할 적폐임이 분명하다.

손창용

부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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