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서영처 시인

▲ 서영처 시인은 “음악이 곧 인문학이다. 음악과 문학 사이에는 닮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리듬 정도가 아니라 겹치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 묘사하고 설명하고 논증하는 것이 음악 속에도 다 들어있다”고 말했다.
▲ 서영처 시인은 “음악이 곧 인문학이다. 음악과 문학 사이에는 닮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리듬 정도가 아니라 겹치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 묘사하고 설명하고 논증하는 것이 음악 속에도 다 들어있다”고 말했다.

“‘메기의 추억’은 미국 민요임에도 한국인이 좋아하는 애창곡 1위에 오르기도 했어요. 떠오르는 이미지나 이야기, 향수가 굉장히 짙어 세대를 아울러 공유하는 추억의 노래가 됐죠. 메기의 추억이 우리의 노래가 되면서 그 속에 함축돼 있는 이미지를 찾아보게 됐어요. 노래의 진폭을 따라 그 시대의 메기라 할 수 있는 이웃 언니의 이야기를 시로 쓸 수 있었죠.”
서영처(54)시인은 ‘메기의 추억’에서 영감을 얻어 ‘옛날의 금잔디’라는 시를 썼다.
그는 메모해 둔 시어를 살 찌워 시로 키워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이따금 음악을 듣다가 시적 영감을 떠올린다고 했다.
음악적 이야기를 시에 담아 2006년 펴낸 첫 번째 시집 ‘피아노 악어’를 시작으로 ‘옛날의 금잔디’와 같이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쓴 시를 엮은 ‘말뚝에 묶인 피아노’(2015년)로 우리나라 문단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 시인은 “첫 시집을 냈을 당시 얼떨떨할 정도로 조명을 많이 받았다”고 떠올렸다.

◆음악이 곧 인문학

처음부터 시와 음악을 함께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은 늘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중학교 2학년때는 세계문장대백과사전, 세계의 명시산책 등 전집류를 연속 간행한 삼중당문고에서 나온 200원짜리 포켓북을 자주 사서 읽었죠.”
문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그였지만 문학보다 음악을 먼저 접했다.
음악에서 시적 영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오랫동안 음악을 곁에 두고 있었던 이유가 컸다.
어린시절 교회에서 배우게 된 피아노를 시작으로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해 대학 음악과에서 바이올린 전공으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문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3년 시인으로 등단 후 국문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다.
음악과 문학 사이를 과감히 뛰어넘은 그의 행보는 늘 주목받았다.
서 시인은 “음악을 공부했던 사람이 문학 공부를 해서 학위를 받은 경우는 있지만 시쓰고 창작하는 경우는 드물다보니 특별한 케이스로 보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알고보면 유명한 작가들 중에도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던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국문학을 공부하면서 문학하는 사람이 음악을 알면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등단 하자마자 국문학 박사 과정에 들어갔어요. 중간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불현듯 ‘잘할 수 있겠다’싶었어요. 역사성과 사회성, 예술성, 문학성 등이 고루 갖춰진 음악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온 것이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는 음악이 곧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음악과 문학 사이에는 닮아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서 시인은 “음악과 문학이라고 하면 리듬 정도가 아니라 겹치는 부분이 많다. 묘사와 설명, 논증이 음악 속에 다 들어있다. 음악에는 주인공, 스토리텔링 등이 다 들어있다. 희로애락, 시기 질투, 반목, 군중심리 등 온갖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다. 음악은 추상적이면서 굉장히 포괄적이어서 지시하는 것 이상을 내포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문학도 그렇듯 음악에서도 비유와 은유가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선율이 곧 하나의 문장

서 시인은 2015년부터 계명대 타블라라사 칼리지에서 글쓰기 강좌를 맡고 있다. 글쓰기 기초와 명저ㆍ고전 읽기 등을 통해 생각을 체계적으로 글로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음악 관련 산문집 두 권을 펴내기도 했다.
서 시인은 “음악을 제대로 해석한 책을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 작곡가가 누구이고 그 시대는 어땠는지 등이 다였다. 그것은 작곡가의 에피소드 밖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 음악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곡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것을 인문학적으로 읽어낼 줄 아는 방법을 전하고자 펴낸 것이 클래식 산문집 ‘지금은 클래식을 들을 시간’이다.
“대부분 클래식 음악이 문학 텍스트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에요. 독일 가곡은 거의 100%죠. 관현악곡이나 오케스트라 곡, 실내악곡도 문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쓰여진 게 굉장히 많아요. 선율이 있으면 선율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해요. 하나의 선율이 하나의 문장이 될 수 있고, 하나의 테마가 돼 주인공이 될 수도 있죠.”
지난해부터는 영문학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스토리텔링 기법과 음악적 구성양식’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음악을 공부한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음악이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자리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스토리텔링 기법이나 연결되는 부분을 연구하기도 했다. 내용도 재미있지만 서로 일치하는 점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나중에 모아서 책으로 내도 재밌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방학시인’이라 일컫는다. 학기 중 바쁜 틈에서 벗어나 방학 후 시를 쓸 수 있는 시간을 오롯이 가질 수 있어서다.
“앞으로는 시를 의도적으로 읽고 쓰고 생활화하려고 해요. 다른 일에 쫓기다 보면 시가 와주기를 기다리게 되는데 더 좋은 시를 쓰고, 좋은 시인, 훌륭한 교수가 되기 위해, 그리고 더 좋은 문학을 위해 시를 열심히 써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글ㆍ사진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서영처 시인 약력

1964년 영천 출생
2003년 ‘문학/판’으로 등단
2006년 시집 ‘피아노 악어’ 출간
2012년 산문집 ‘지금은 클래식을 들을 시간’
2015년 시집 ‘말뚝에 묶인 피아노’, 산문집 ‘노래의 시대’ 출간
현 계명대 타블라라사 칼리지 교수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