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성욱<br />
사회2부
▲ 류성욱
사회2부

“‘아사(餓死)’라는 표현을 꼭 썼어야 했습니까.”

얼마 전 구미에서 발생한 ‘20대 부자 사망사고’ 기사를 보도하고서, 한 공무원에게 들은 말이다. 아마 그 공무원은 ‘아사’라는 단어가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구미시의 위상에 흠집을 남겼다고 생각해 섭섭함을 토로한 것이다.

만일 이 기사를 상세히 보조하지 않았다면, 이들 부자의 죽음은 몇 줄짜리 단순변사 사건으로만 끝났을 것이다. 설혹 뒤늦게 발견된다 해도 누군가 문제 삼지 않으면, 슬그머니 그렇게 잊혀졌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복지의 현수준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본 것 같아서 가슴이 먹먹해 진다.

20대 젊은 아버지와 2살짜리 어린 아들의 시신이 발견된 건 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지난 3일이었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이웃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해 잠겨 있는 문을 힘들게 열고 들어갔다. 입구 쪽에는 아기가, 방 안쪽에는 아빠가 숨진 채 누워 있었다. 외부침입과 타살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기는 매우 야위어 있었고, 아기의 젖병과 분유통은 텅 비어 있었다. 부검 전이라, 아버지가 병으로 갑자기 쓰러져 숨지자 아기가 먹지 못해 사망했을 것이란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들 부자의 사인이 설혹 ‘아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들이 생활고를 겪은 정황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살고 있던 집의 월세는 두 달 이상 밀려 있었고, 도시가스는 요금이 연체돼 끊겨 있는 상태였다. 조금만 신경 써 지켜보았더라면, 적어도 이들 부자가 죽음에까지는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행정도 손쓸 수 없었던 면도 있다. 아빠는 주민등록이 말소돼 있었고, 아기는 출생신고조차 돼 있지 않았다. 사회 안전망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몇 년 전에도 구미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15살 엄마와 27살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방치돼 있다가 구조됐다. 엄마가 가출하자 아기는 아빠와 함께 구미의 한 원룸에서 살았다. 집에는 중학생쯤 돼 보이는 남녀 2∼3명이 함께 살았고, 쓰레기로 가득했다. 아기가 쓰레기더미에서 울고 있는 것을 민간 사회복지사가 발견, 극적으로 구조했었다.

이번 부자 사망사건과 관련해 구미시는 지난 9일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결론은 우체국 집배원, 요구르트 배달원 등 가정을 방문하는 직업인들과 공조해 사회적 고립가구를 찾아내 돕겠다는 궁색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대책이 정말 복지 사각지대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통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단순한 법 개정과 제도 개선만으로는 복지 안전망에 뚫린 구멍을 메울 수 없다. 인력 확충, 지원제도의 홍보 등 보다 실질적인 해결책이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민간 사회복지기관의 역할을 늘려, 복지 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답답하다.

류성욱 기자 1968plu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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